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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미·중관계사] 신해혁명 110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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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0 23:23:53 수정 : 2021-10-10 23: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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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시진핑 주석은 신해혁명 110주년 기념행사를 하루 일찍 가졌다. 기념연설에서 그는 110년 전의 역사적 계시의 의미를 오늘날 중국이 당면한 사명으로 설명했다. 중화민족의 부흥이 최종목표이며 이의 견인세력을 공산당이라며 당의 통치를 정당화했다. 부흥을 위한 중국인의 용감한 분투와 단결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대내외 환경을 조성할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대만 통일문제가 중화민족의 부흥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연설을 마쳤다.

그러나 그의 연설에서 신해혁명 지도자 쑨원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어 보였다. 그는 ‘삼민주의’(민족, 민권, 민주)의 확립, 공화정과 새로운 나라(공화국)의 설립을 꿈꿨다. 혁명 준비과정에서 그는 서구민주주의의 가치를 인용하면서 미국의 지원과 지지를 최대한 확보하려 했다. 시진핑이 통일에서 외세(미국 등)의 어떠한 간섭도 불허한다는 발언과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110년 전과 오늘의 중국 상황이 다르지만 말이다.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왼쪽), 필랜더 녹스 국무장관 초상화. 출처: 위키피디아

그렇다고 쑨원이 미국의 가치를 전면 수용한 것은 아니다. 그는 미국의 지지에 중국시장을 보장했다. 이른바 ‘혁명 채권’을 발행한 것이다. 그는 미국인 지인 폴 라인바거와 호머 레아를 통해 이를 미 정부에 어필했다. 1909년에 하워드 태프트의 대통령 취임과 필랜더 녹스의 국무장관 부임으로 승산이 있어 보였다. 이들의 아시아정책의 중심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월가의 큰손 J P 모건에게도 대중국 투자의 활성화를 독려한 사실도 한몫했다.

쑨원의 대미설득은 사실상 실패했다. 미국의 경제적 관심은 온통 일본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한 관심은 오로지 중국인의 교육이었다. 가령, 미국은 ‘의화단의 난’으로 받은 배상금 2500만달러를 중국인 교육에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1908년 미 의회는 1400만달러의 펀드를 조성해 칭화대 설립에 투자하고 이듬해 중국 유학생 50명을 파견했다.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오늘날 미·중 양국이 새로운 중국을 같이 꿈꾸며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한 협력이 부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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