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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진정한 DNA, 속담에 관한 모든 것

입력 : 2021-10-09 01:00:00 수정 : 2021-10-08 18: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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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 3500여개 속담 총망라
뜻·어원· 관련 표현들 상세히 풀어내
숨겨진 맥락까지 다양한 측면서 탐구
우리말과 우리 문화의 재발견 도와
오랫동안 속담을 연구해온 김승용씨는 우리말의 진정한 DNA가 우리 속담 안에 담겨 있다며 많은 우리 속담을 다양한 측면에서 탐구하고 정리한다. 게티이미지

우리말 절대지식/김승용/동아시아/2만8000원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이 제나라에 많은 군사를 파견하고 기근마저 든 이웃 연나라를 칠 준비를 서둘렀다. 위기일발의 연나라 소왕은 합종책을 주도한 소진의 동생 소대에게 부탁했다. 조나라에 가서 침공하지 말도록 설득해 달라고. 소대는 이에 혜문왕을 찾아가 인사한 뒤 말했다.

“오늘 조나라로 들어오는 길에 강변을 바라보니, 조개가 입을 벌려 해를 쬐고 있더군요. 이때 도요새가 날아와 조갯살을 쪼았습니다. 깜짝 놀란 조개가 입을 닫아버리고 부리를 놓아주지 않았지요. 그러자 도요새가 ‘이대로 있으면 너는 말라죽을 것’이라 하니, 조개는 ‘내가 놓아주지 않으면 너는 굶어죽을 것’이라며 서로 팽팽히 맞섰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어부에게 둘 다 잡혀버렸지요.”

혜문왕은 어좌에 앉아 지긋한 표정으로 소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소대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전하는 지금 연나라를 치려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도요새입니다. 두 나라가 싸우면 저 강력한 진나라가 어부가 되어 둘 다 얻을 것입니다.”

고개를 끄덕였던 혜문왕은 소대의 이야기가 끝나자 연나라 침공계획을 철회했다고, 중국의 사서 ‘전국책’은 기록한다. 소대가 혜문왕을 설득한 이야기는 고사성어 ‘어부지리’의 유래가 됐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의미의 속담이 있다. 바로 ‘시앗 싸움에 요강장수’라는 속담이 그것이다. 시앗은 첩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니, 본처와 첩이 싸우면서 요강을 내던져 깨니 결국 요강장수만 돈을 번다는 의미다.

오랫동안 속담을 연구하며 신문과 잡지 등에 속담 관련 글을 연재해온 김승용씨의 개정증보판 ‘우리말 절대지식’은 우리말의 진정한 DNA가 우리 속담 안에 담겨 있다며 속담을 다양한 측면에서 정리하고 탐구한 책이다. 속담과 그 풀이만 다루는 게 아니라 그것의 어원과 관련 있는 다른 표현, 오늘날 새롭게 만들어진 현대속담까지 아울러 이미 ‘제57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과 ‘2016 한겨레 올해의 책’을 거머쥔 책이기도 하다. 책은 속담 ‘시앗 싸움의 요강장수’를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먼저 뜻을 “누군가의 다툼이나 반목을 틈타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라고 정리하고, 시앗의 뜻을 풀어준 뒤 그 의미와 함께 스토리를 찬찬히 이야기한다. 조금 길 수도 있지만,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에 용변 본 요강을 들고 나와 씻는데, 자기 남자와 잔 첩을 아침에 요강 비시러 나왔다 마주치니 홀겨보고 톡톡 쏘다가 결국 말다툼이 커진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 집에서 나가, 하고 첩의 요강을 내던져 깨니, 왜 애먼 내 요강을 깨고 그래요, 하고 본처의 요강도 내던진다. 요강 부시러 나와서 요강 부순 꼴이고, 그 덕에 요강장수는 요강값을 두 번 번다.”(407쪽)

김승용/동아시아/2만8000원

책은 그러면서 속담과 같은 의미의 고사성어로 ‘어부지리’를 제시한 뒤 위에 나온 연나라 소대와 조나라 혜문왕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어서 반대되는 속담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를 정리하고, 다시 현대의 속담으로 “의문의 1승”을 제시한 뒤 “누군가 욕을 먹거나 망하면서 그 사람과 밀접하면서 반대에 서 있는 사람이 의도치 않게, 또는 자신도 모르게 좋은 평가를 받을 때 쓴다”고 설명한다. 속담의 뜻과 유래, 고사성어, 반대 속담과 현대 속담까지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어서 시앗과 관련한 다른 속담들이 고구마줄기처럼 뒤따르는데. 부처님처럼 어진 아내라도 첩을 보고 좋아할 여자는 없다는 의미의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첩과 함께 사는 건 까끌까끌한 겉보리밥 먹기보다 싫다는 의미의 “겉보리를 껍질째 먹은들 시앗이야 한집에 살랴”, 본처와 첩 사이에는 잘 전이되는 하품조차 옮지 않는다는 의미의 “작은댁네 하품은 큰댁네한테는 옮지 않는다” ….

책은 5년 만의 개정증보판으로, 본문은 기존 600쪽에서 700쪽으로 무려 100쪽이 늘었고, 다룬 속담 개수도 약 3000개에서 3500여 개로 많아졌다. 아울러 초판에서는 속담에 등장하는 사물이나 이야기를 일차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쳤다면, 새 책에선 숨겨진 맥락을 밝히는 데 초점을 맞췄다. ‘맥락’이라는 설명을 추가로 구성해 해당 속담의 숨은 속뜻도 밝혔다.

가령 속담 ‘횃대 밑 사내’를 설명을 보면, 횃대를 닭장에 가로질러진 긴 막대라고 정의하고 그 의미를 설명한 뒤 ‘맥락’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막대 양 끝을 끈으로 넉넉히 이어 벽의 못에 건 형태의 옷걸이도 횃대라고 부른다. 즉, 방 안 옷걸이 아래 앉아 큰소리친다는 말. 남자가 바깥세상에서는 큰소리를 못 내고 비굴하게 굴다가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나 큰소리친다는 말이다. 이 속담은 능력 없이 집에만 처박혀 있는 남자에게도 썼다.”(198쪽)

요컨대 책은 사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단순히 ‘사전’이 아닌 셈이다. 속담의 의미를 현대에 되새기며 과거와 현재의 속담을 통해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재발견하도록 돕는 유의미한 인문교양서다. 한동안 책 속을 좌충우돌 배회하다 보면, 초판 ‘머리말’에 담긴 ‘무식하게 용감하게’라는 그의 열정에 고개가 절로 숙여질지도.

“100여 년 사이 일제의 치밀한 문화말살 정책과 한국전쟁, 서구와의 문화충돌로 속담에 담겨왔던 오랜 우리 문화는 부서지고 희미해졌다. 그와 함께 속담 역시 흐려지는 문화 뒤에서 암호가, 또 화석이 됐다. … 글쓴이는 흔한 단답풀이가 아닌 ‘지나칠 만큼 친절한’ 속담 책을 꼭 만들고 싶었고, 무식하게 용감하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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