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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 직접 우산 들고 젊음 과시한 佛 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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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09 08:00:00 수정 : 2021-10-08 16: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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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커스 발족으로 佛 국제적 위상에 타격
내년 대선 앞두고 60대 제무르 인기 상승
쫓기는 마크롱, ‘젊은 지도자’ 부각 안간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EU·서부 발칸 정상회의가 열린 슬로베니아 크란에 세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직접 우산을 쓰고 이동하고 있다. 크란=EPA연합뉴스

미국·영국·호주 3국의 새 동맹 ‘오커스’(AUKUS) 발족으로 큰 타격을 입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국제사회에서 프랑스의 존재감을 부각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서 이겨 연임하려면 외교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지지율이 쑥쑥 오르며 차기 대통령을 넘보는 에리크 제무르가 60대인 반면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40대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젊음을 과시하는 모습이다.

 

지난 5, 6일(현지시간) 슬로베니아 크란에선 유럽연합(EU) 회원국과 그 파트너인 서부 발칸 국가(알바니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세르비아·몬테네그로·북마케도니아·코소보)의 정상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외신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의의 최우선 의제는 유럽의 군사적 통합과 안보협력 추진, 자율성 강화 등이었다. 이는 오커스 출범이 계기가 됐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영국이 자기네끼리만 따로 어울리는 상황에서 유럽도 뭔가 독자적인 비전과 전략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회의를 지배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퇴임을 앞둔 상황에서 회의는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했다. 그는 다른 유럽 정상들을 향해 “우리가 진정한 유럽의 군대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유럽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영국이 주도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그리고 오커스와 별개로 EU만의 독자적인 유럽군을 창설하자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오커스 결성으로 호주가 핵잠수함 건조 기술을 미국에서 넘겨받기로 하며 기존에 프랑스로부터 재래식 잠수함을 구매하기로 한 계약은 깨졌다. 프랑스로선 계약 파기로 77조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날렸으니 경제적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년 4월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마크롱 대통령 입장에선 커다란 악재를 만난 셈이다.

 

현재 프랑스 대선 후보 지지율은 마크롱 대통령이 24%가량으로 1위를 달리고, 그 뒤를 극우 성향의 전직 언론인 에리크 제무르(17%)가 바짝 뒤쫓고 있다. 올해 63세로 44세인 마크롱 대통령보다 거의 스무살 가까이 많은 제무르는 유력 일간지 르피가로 논설위원을 지냈을 뿐 정치 경험은 없다. 하지만 “무슬림 200만명을 추방해야 한다”, “마약 밀매를 하는 자들은 흑인과 아랍인들” 같은 거침없는 발언으로 극우 성향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6일(현지시간) EU·서부 발칸 정상회의 시작에 앞서 1977년생 동갑내기인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올해 36세로 세계에서 가장 젊은 지도자인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 크란=EPA연합뉴스

제무르가 60대라는 점에 착안한 듯 마크롱 대통령은 요즘 자신의 젊음을 강조하는 중이다. 이번 EU·서부 발칸 정상회의 때에도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 등 북유럽의 젊은 지도자들한테 강렬한 친근감을 드러냈다. ‘프랑스 등 유럽의 미래는 우리 젊은이들한테 달려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칼라스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과 1977년생 동갑내기로 둘 다 44세이고, 마린 총리는 올해 36세로 이른바 ‘MZ세대’에 해당한다.

 

정상회의 기간 슬로베니아 크란에는 비가 많이 내렸는데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우산을 쓴 모습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또한 젊은 지도자라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최근 국내에선 비오는 날 실외에서 50대 중반 나이의 법무차관을 위해 부하직원이 무릎까지 꿇은 채 우산을 씌워주는 광경이 이른바 ‘꼰대’, ‘과잉의전’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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