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도 미래 이야기해야 마음 성장
푹신한 소파에 엉덩이를 푹 담그고 앉아 가끔은 누워서 지나온 인생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드는 영화 주인공들을 봐서 그런지 사람들은 심리상담을 두고 ‘과거를 말하는 게 치료구나’라는 인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맞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건 중요하다. 현재의 자기는 경험이라는 흙에서 피어난 꽃이다. 과거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되풀이되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까지 뻗어나간다. 지난날의 상처를 없는 셈 치며 자기를 속이고 살면 마음 한구석이 곪는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보면 과거로만 회귀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자주 본다. “불안한 건 어린 시절 상처 때문이에요! 부모님이 그때 내게 모진 말만 하지 않았으면 지금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라는 서사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도 있다. “진심어린 사과도 받지 못했는데 과거를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겠어요!”라며 원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한다. 과거가 남겨놓은 무력감에 짓눌려 “아픔이 치유되지 않아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하며 현재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인생 서사의 주제가 과거에만 묶여 있는 건 상처가 크기 때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옛 기억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를 비롯한 정신건강전문가들 탓도 있고, 사람들이 정신분석이론을 너무 단순하게 받아들인 때문이기도 할 테다. 과거는 지울 수 없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유명한 정신과 의사와 상담해도 트라우마의 상흔이 완전히 복구될 수는 없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무언가에 대해 말하면 말할수록 심리적으로 우리는 그것에 더 속박되고 만다. 과거에 대해 말하는 것도 이런 역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소소한 하루 일상을 이야기하는 것도 과거를 돌아보는 일 못지않게 중요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이고, 어떤 공상을 자주 하는지, 좋아하는 반찬은 무엇이며, 키우고 있는 반려묘 이름과 그렇게 지은 이유를 말해 보는 것도 자기를 알아가기 위한 소중한 이야기 재료다. 이루기 힘들게 느껴지는 꿈일지라도 그것을 마음껏 펼쳐놓아 보는 것도 심리상담에서는 필수다. 단물 다 빠진 껌처럼 되어 버린 과거를 곱씹는 것보다는 상상일지라도 미래를 언어로 그려 보는 편이 훨씬 낫다. 이런 이야기들을 다 모아서 복잡다단한 마음을 전체적으로 가늠해보는 것이 정신과 상담이다.
이미 지나온 과거는 변하지 않는 것일까? 상처와 아픔으로 점철된 과거를 멍에처럼 영원히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나의 정체성도 그런 과거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버린 걸까? 그렇지 않다. “인간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미래뿐이라고 믿고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미래가 과거를 바꾸고 있습니다. 바꿀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고, 바뀌어 버린다고도 말할 수 있죠.” 내가 좋아했던 소설 속 주인공의 이 대사처럼, 미래가 과거를 바꾼다.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도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이야기들이다. 과거 이야기만으로 ‘나’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꽃이 피려면 줄기는 땅이 아닌 해를 향해 솟아올라야 한다. 우리 마음이 성장하기 위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꽃으로 피어날지는 과거가 되어가는 현재와 현재가 되어가는 미래가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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