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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 아닌 ‘교제살인’ 입니다”

입력 : 2021-09-18 02:00:00 수정 : 2021-09-17 18: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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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이정환/오마이북/1만5000원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이주연·이정환/오마이북/1만5000원

 

2018년 5월 11일, A가 목숨을 잃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차 안에서 살인을 벌인 건 A가 사귀었던 남자.

“네가 살아 있는 동안은 용서 못한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응징한다.”

남자의 광기는 오래된 것이었다. A가 바람을 피운다는 강박과 의심은 상습적인 폭력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A의 차를 불지르기도 했다. 헤어지자는 A의 요구 뒤에도 이어진 집착의 끝이 살인이었다.

2016∼2018년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사귀다가 상대를 죽인 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책에 실린 사례 중 하나다. 108건의 판결문에는 108명의 여성이 연인 혹은 연인이었던 남성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참담한 일들이 담겨 있었다. 3년 동안 108건이라는 건 수치상 열흘에 한 번 꼴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다. 피해자들 모두가 지극히 사소한 이유를 죽임을 당했다. 술을 그만 마시라고 했다고, 술에 취했다고 나무랐다고, 돈을 아껴 쓰라고 충고했다는 게 폭력의 이유였다. 흔히 ‘데이트 폭력’이라 부르지만 책은 ‘교제살인’이라는 말을 제안했다. “‘데이트’라는 단어로는 이 고통과 죽음들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책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교제살인의 대부분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비극이 아니라 뚜렷한 ‘살인의 전조’를 가지며, 이런 전조를 확실하게 식별해 내 죽음을 막아야 할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교제살인에 경찰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국회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여자친구를 때려 죽였는데도 집행유예로 풀어주는 법원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여성 폭력에 대응할 기구를 만들지 않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강구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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