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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업체 피해 신속구제… 대기업 ‘단가 후려치기’에 철퇴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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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6 06:00:00 수정 : 2021-09-16 08:3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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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대금 지급명령제도

공정위, 다수 불공정거래 사건에 적용
하도급법 근거한 세계 유일 시정조치

국고 귀속으로 그치는 과징금과 달리
피해기업 민사소송 안 해도 보상받아

2020년 한온시스템에 133억 부과 ‘최고’
45개 하청사에 ‘숨통’… 적용 확대 방침

사법부는 신중 접근·학계선 긍정 평가
중소기업계 “법 바꿔 先피해구제 필요”
지난해 9월 육성권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거래정책국장이 한온시스템의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가구 부품 금형 제조 등을 하는 A업체는 국내 가구 업계 3위 코아스에 납품한 제품에 이상이 없는데도 페널티를 부과받아 하도급대금 1500여만원이 깎였다. 제품이 반품된 적이 없는데도 마치 반품이 있었던 것처럼 가짜 정산 서류가 만들어져 또 하도급대금 3600여만원을 감액당했다. 대금 일부인 2500여만원은 추후 위탁 때 받기로 했지만 4년이 넘도록 추가 발주가 없어 받지 못했다. 코아스가 내야 할 어음대체결제수수료 2200여만원도 제품단가를 95% 인하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사실상 대납해야 했다.


1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공정위는 이 사건과 관련해 코아스에 부당한 감액 대금 및 미지급 대금 8700만원과 지연이자 2700만원 등 합계 1억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달 명령했다. 이와 별도로 과징금 5900만원도 부과했다.

대기업을 상대로 4년 넘게 받지 못한 돈과 이자 1억1500만원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규모 하청업체에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운영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액수다. 공정위의 이번 제재 이후 관련 업계의 비슷한 사건이 ‘자발적 합의’로 마무리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업체 신속 구제 ‘지급명령’… 공정위 “확대해 나갈 것”

하도급대금의 지급을 명령하는 ‘지급명령’은 하도급법 제25조에 따라 인정되는 시정조치다. 세계적으로 하도급법을 도입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며, 지급명령은 한국에만 있는 제도다. 최근 공정위는 다수의 불공정하도급거래 사건에서 지급명령을 부과하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지급명령은 지난해 10월 한온시스템에 내려진 133억원이다. 원가 절감을 위해 정당한 사유 없이 이미 결정된 납품대금을 사후 협상을 통해 차감하는 방식으로 45개 하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납품대금 80억5000만원을 감액한 행위가 적발됐다. 업체당 평균 2억원에 가까운 돈으로 중소업체들에는 적지 않은 운영자금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에는 현대중공업이 협력 업체가 납품한 화력발전소용 엔진 실린더 헤드의 하도급대금을 미지급한 행위에 대해 미지급대금 및 지연이자 4억5000만원의 지급명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건설분야 하도급이 아닌 제조업 분야 하도급 관련 최초 지급명령이었다.

지급명령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피해업체의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권리구제를 꼽을 수 있다. 공정위가 지급명령이 아닌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재를 할 경우 과징금은 국고에 귀속되며, 피해기업은 별도 민사소송을 통해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수개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더구나 대기업은 막강한 대형 로펌을 고용하는 데 비해 중소업체는 소송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달리 지급명령은 원사업자가 불복해 소송으로 이어지더라도 공정위가 피해기업의 편에 서서 소송까지 맡아준다.

본보기 효과도 있다. 공정위가 과징금 등 제재를 한 사건과 비슷한 경우라도 사건마다 조사와 심의를 거쳐 결론을 내릴 때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그러나 유사 사건에 지급명령이 내려지면 비슷한 상황에 놓인 원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소송으로 시간을 끄는 전략은 무의미하게 된다. 오히려 회사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것도 고려해야 하고 지연이자도 물어야 한다. 법 위반 상태를 서둘러 해소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에 따라 합의를 통한 원만한 해결이 이뤄지기도 한다.

공정위는 지급명령 제도를 더욱 활성화할 계획이다. 장혜림 공정위 제조하도급개선과장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통해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시간과 비용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공정위는 피해의 신속한 구제에 무게를 두고 지급명령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제한적 적용해야”… 학계 “확대 바람직”… 중소기업계 “법 개정 먼저”

지급명령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신중하다. 대법원은 2018년 3월 신영프레시젼의 불공정하도급거래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지급명령에 대해 ‘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일방적으로 낮은 단가에 의한 하도급대금 결정 혐의에 대해 이전 가격을 정당한 하도급대금이라고 볼 만한 근거가 없고, 행위의 성질상 정당한 하도급대금을 산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원의 불인정 판단에 대해 “민사재판이 흔히 그렇지만 부당 감액 부분을 엄격하게 입증하라고 요구한 것”이라며 “하도급법이 민사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이례적인 법인데, 엄격하게 처리하라는 취지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최근 하급심에서는 손해배상 사건에서 일률적으로 단가를 인하한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현대중공업과 엔진부품 납품 회사인 삼영기계 간 분쟁에 대해 울산지방법원은 지난해 10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의 종전 거래 단가 또는 대금이 종전 거래 당시의 일반적인 단가 또는 대금의 지급 수준보다 상당히 높았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종전 거래 내용과 단가를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가의 수준을 인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교수는 공정위의 지급명령 확대 방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공정위가 시정조치와 과징금만 부과하면 피해자는 민사소송으로 해결해야 하고, 공정위 제재와 별개로 법 위반사항을 다시 입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급명령은 이런 시간과 절차를 생략할 수 있게 하므로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민사제도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학회에서도 지급명령 제도에 호의적”이라며 “다만 공정위가 철저하게 조사하고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는 지급명령제도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고 적용도 제한적이라 한계가 있는 만큼 원사업자가 공정위 결정에 불복했을 때 수급사업자가 소송기간에 금전적으로 버틸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금 미지급은 논란이 덜할 수 있지만, 설계변경이나 감액 문제는 부당한 정도를 판단하느라 공방이 치열해질 수 있다”며 “현재는 공정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해도 유효한 계약임을 전제로 감액 비율의 적정성을 따지는데 그럴 경우 소송이 길어져 피해기업이 금전적으로 버티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관련법을 개정해 공정위가 부당하다고 판단하면 일단 해당 특약을 무효화해 피해구제를 먼저 한 뒤 소송 결과에 따라 나중에 정산하는 방안, 국고에 귀속되는 과징금을 피해기업의 소송비 지원에 사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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