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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후 취업 준비?… 업무 없는 ‘독서실 인턴’에 540억 혈세 '줄줄'

입력 : 2021-09-13 18:11:33 수정 : 2021-09-16 10: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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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만 2000명 채용

취업역량 강화 명목 단기고용
부서 수요와 무관하게 떠맡겨
업무 대신 개인공부해도 방치

“어느 공기업서 돈벌며 공부할까”
취준생 사이트선 대놓고 찾기도
전문가 “청년에 퍼주기” 지적

올해 상반기 한 공기업 지역본부에 체험형 인턴으로 채용된 A(27)씨는 출근 후 비어있는 회의실로 직행해 취업 준비용 교재를 펼친다. 최근에는 인터넷 강의 서비스도 보기 시작했다.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근무시간에 취업공부를 하는데도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다. 같은 사무실 선배들과는 점심 식사할 때나 겨우 말을 섞는다.

현장 수요와 무관하게 뽑힌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들이 사무실에 방치되고 있다. 취업에 필요한 실무를 배우기는커녕 대놓고 “조용히 앉아서 취업 공부나 하라”고 떠미는 경우가 상당수다. ‘독서실 인턴’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이유다.

13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371개 공공기관이 채용한 체험형 인턴은 총 9352명이다. 이날 현재 공공기관 채용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체험형 인턴 모집 공고도 55개에 달한다.

체험형 인턴은 취업 준비생의 직무체험 및 취업역량 강화 등을 목적으로 하는 단기간 채용 제도다. 180만원 내외의 월급을 받고 약 3~4개월간 근무하는 형태로, 채용과 연계되지는 않는다. 기관에 따라 두세 차례 계약 연장이 가능할 때도 있다.

취업 준비생들이 선호하는 공공기관인 만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뽑혔지만, 현장에서 애물단지로 여겨지는 경우가 상당수다. 부서 수요나 의사와 무관하게 인턴 사원들을 떠맡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근무하는 인력에게 직무 교육을 시키기도, 고유 업무를 주기도 애매하다고 공기업 직원들은 불만을 터뜨린다. A씨처럼 아예 회의실 하나를 비우고 인턴 사원들을 몰아넣는 공기업도 있다.

이런 상황을 역이용하는 취준생들도 있다. 공기업 취업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어느 공기업이 독서실 인턴이냐”고 묻는 게시물이 주기적으로 올라온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할 바에 차라리 공기업 인턴으로 돈도 벌면서 공부하는 게 이득이라는 것이다.

대놓고 공부만 하려는 인턴 때문에 갈등을 빚을 때도 있다. 정당한 업무 지시를 내려도 인턴 사원들이 소극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한국전력공사의 한 직원은 “공부가 권리인 듯 오는 인턴들이 있어서 자재 창고 청소를 시킨다”며 “체험형 인턴제도의 취지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턴을 이렇게 많이 뽑아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근무태만으로 계약이 종료된 인턴 사원과 법적 다툼을 하는 경우마저 발생한다. C(25)씨는 지난 5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다. 인턴으로 재직 중이던 공기업이 부당하게 자신의 인사고과를 매겼다는 게 C씨의 주장이다.

반면 해당 공기업은 “C씨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50여건의 글을 작성하거나 게임을 하는 등 업무시간을 사적으로 이용했다”고 맞섰다. 지노위는 C씨의 손을 들어줬다.

체험형 인턴 채용 규모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16년 9469명이었던 체험형 인턴은 지난해 1만7384명까지 늘어났다. 5년 만에 83.6% 증가한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에도 2만2000명을 체험형 인턴으로 채용하겠다고 못박았다. 36개 공기업은 이에 발맞춰 총 6876명을 체험형 인턴으로 선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올해 예상 영업손실이 4조원대에 달하는 한전은 1700명으로 가장 많은 인원을 뽑는다. 정부 예산도 올 한 해 542억원(체험형·인턴형 일경험 프로그램 지원)이 투입된다.

전문가들은 “체험형 인턴제도가 결과적으로는 악영향만 끼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통계상의 청년 실업자를 줄이기 위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고 공기업들은 (어쩔수 없이) 따라가는 상황”이라며 “공기업은 물론 취준생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3개월간 재난 지원금을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반문했다. 오히려 체험형 인턴이 청년의 구직활동 기간 증가나 구직자의 경력 인플레이션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문제해결성 과제 수행, 멘토링 프로그램 등 체험형 인턴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며 “인턴 프로그램을 얼마나 제대로 운영했는지 각 공기업의 경영평가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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