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정혜영

방 한 귀퉁이에 자리 잡은 초록 서랍장 하나

군데군데 흠집이 헤링본 무늬를 닮았다

가시로 수 놓여 있다

 

흠집은 빠져나온 속옷처럼 자꾸만 눈에 밟히고

서랍 속 상처의 뼈대가 겹쳐지면서 속울음이 들렸다

말없이 닫혀 있는 크고 작은 서랍 속도

상처투성이지만

 

그 상처, 자수의 뒷면처럼 나를 버텨주었다

 

수많은 가시가 버팀목인 물고기의 몸

그가 삼킨 파도 소리를 들었다

 

초록 물고기 한 마리, 푸른 물살의 뼈대라고

내 방 한구석에도 오래된 갈색 서랍장이 있습니다.

시어머님의 혼수품입니다.

이 서랍장은 서랍을 열 때마다 삐걱거리며 속울음을 웁니다.

청어 뼈 같은 흠집이 가득한 서랍 속.

그 상처는 시어머님과 나와의 28년이 합쳐진 세월의 흔적입니다.

그녀와 나의 수많은 애환을 함께해온 서랍장.

시인도 살면서 무수히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겁니다.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삶을 그대로 지켜본 초록 서랍장.

시인은 서랍 속 같은 캄캄한 어둠 속 긴 겨울을 잘 버텨내고

이제 뼈만 남은 물고기의 몸이 되어 파도 소리를 듣습니다.

캄캄한 밤,

초록 물고기 한 마리가 다시 푸른 물살의 뼈대를 가르고 있습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