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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보증금 빼 직원들 월급 주고 끝내…맥줏집 사장님의 비극

입력 : 2021-09-13 06:00:00 수정 : 2021-09-13 14: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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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줏집 23년 운영 사장 극단선택에 추모 이어져

한때 식당 4곳 운영할 정도로 성공
코로나 직격탄… 매출 줄어 생활고
“항상 직원복지 챙기고 기부 앞장”
온라인선 “지원 없는 희생” 비판
여수서도 자영업자 숨진 채 발견
지난 11일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으로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23년차 맥줏집 주인 A씨의 빈소의 모습. 연합뉴스

“사장님 너무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지난 10일 한 온라인 추모 공간에 자신이 일했던 식당의 사장을 기리며 올라온 글이다. 8년 이상 직원으로 일했다는 글쓴이는 “힘들 때마다 항상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저는 사장님께 드린 것이 없어서 또 너무 죄송하다”고 적었다. 또 다른 직원들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글을 올렸다.

이들이 추모하는 사람은 이달 초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영업자 A(57)씨다.

12일 고인의 지인과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서울 마포구에서 20년 이상 식당을 운영해 왔을 정도로 잔뼈가 굵었지만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후 식당 운영과 생활에 어려움을 겪어온 A씨는 지난 7일 식당 지하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시점은 발견 며칠 전으로 추정되고 지인에게 마지막으로 연락한 것은 지난달 31일이라고 한다. 이날 발인을 앞두고 A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도 고인과 함께 일했던 직원의 발길이 이어졌다.

A씨가 식당을 시작한 것은 1999년이다. 처음으로 문을 연 맥줏집이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고, 이 식당의 성공을 발판으로 한때는 일반식당과 일식주점 등 4곳을 동시에 운영했다. A씨는 직원들에게 업소 지분을 나눠 줄 정도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챙기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또 요식업계에서 이례적으로 주 5일제를 시도하거나 연차를 만드는 등 직원들의 복지도 각별히 챙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식뷔페를 운영할 때는 음식을 복지재단에 보냈고, 정당이나 단체들에 후원금을 냈다고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으로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23년 차 맥줏집 주인 A씨에게 예전 아르바이트생들이 남긴 메시지. 연합뉴스

이런 A씨도 코로나19가 몰고 온 장기 불황을 피해갈 순 없었다. 1년 이상 지속하는 사태에서 매출은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하루 10만원도 벌지 못하는 날이 속출했다. 특히 영업제한 조치가 강화한 지난해 말부터는 더욱 힘들어져 1000만원에 달하는 월세와 직원들의 급여 등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몰렸다.

A씨는 숨지기 전 남은 직원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 살고 있던 원룸을 뺐다고 한다. 그럼에도 부족한 돈은 지인들에게 빌려 채웠다. 그런 A씨의 휴대전화에는 채권을 요구하거나 집을 비워 달라는 문자메시지들이 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를 20년 이상 봐왔다는 김수만(45)씨는 연합뉴스에 “A씨에게 장사는 삶의 일부였다. 거의 가게에서 먹고살다시피 하며 일만 했다”며 “옷도 사 입는 법이 없어 제 결혼식장에도 앞치마를 입고 왔더라”고 했다. 김씨는 “지인이 오면 밥값·술값을 못 내게 했고, 직원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도 주머니를 열었다. 주변에 A씨 도움을 안 받아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이익을 크게 자신에게 돌리지 않아 집도 안 샀다”고 했다. 그는 “단체업소에 손님 2명만, 9시∼10시까지 받으라고 하면 장사를 어떻게 하나”라며 “왜 희생은 자영업자만 해야 하는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가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상황으로 인해 휴업 중에 있다. 연합뉴스

A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자영업자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안타까운 목소리와 함께 정부 방역대책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의 한 회원은 “도대체 왜 ‘대’를 위해 ‘소’가 희생돼야 하는 거냐. 희생을 하면 정부가 제대로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다른 회원도 “(A씨는) 정부가 죽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남 여수에서도 치킨집을 운영하던 B씨가 이날 오전 11시43분쯤 생활고를 토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경제적으로 힘들다.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민 기자, 여수=한승하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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