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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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이 일어났을 땐 TV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이 비현실적인 장면이 테러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은 더욱 비현실적이었다. 무고한 민간인이 탄 여객기를 납치해 일종의 폭탄처럼 사용한다?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불경스럽게 느껴지는 일이었다.

얼마 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했던 탈레반은 금세 권좌에서 쫓겨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테러나 전쟁은 먼 나라의 일로만 여겨졌다.

유태영 국제부 차장

모든 관계가 그러하듯 국가 간 관계도 언제 어떻게 엮일지 모른다. 수도 카불과 4시간30분 시차가 나는 중앙아시아의 먼 나라는 우리와 무관치 않은 존재가 됐다. 혈맹이 시작한 ‘항구적 자유’작전에 우리는 해·공군 수송지원단과 의무·공병부대 등을 투입해 지원했다. 이들 부대를 도왔던 현지인 의료진과 기술자, 통역사 등 일부가 이번에 재집권한 탈레반을 피해 한국에 들어왔다. 2007년에는 바그람 기지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국군 병사 1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는 아프간 피랍 사태가 터져 한동안 샘물교회에서 붙박이 취재를 했다. 탈레반은 인질 2명을 살해하며 공포 수위를 높여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최대 크기의 바미안 석불을 눈 하나 깜빡 않고 파괴할 정도로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탈레반의 속성을 우리는 너무도 몰랐다.

탈레반이 특히 여성 인권 탄압으로 악명 높았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 알았다. 아프간 출신 미국 의사이자 작가인 할레드 호세이니의 소설이 계기였다. 그가 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탈레반 1차 집권기를 전후한 아프간 여성의 삶을 정면으로 다룬다. 여성의 단독 외출·교육·직업 금지 등을 규정한 당시 탈레반의 포고령은 소설 속에서 이렇게 이어진다. “여자들이 이유 없이 거리를 나다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상대방이 말을 걸지 않으면 말해서는 안 됩니다 … 남자들과 눈을 마주치면 안 됩니다….” 훗날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런 탈레반 포고령이 “여성들을 자신과 무관한 남성들로부터 격리·추방했고, 이를 위반하면 폭행·감금해 끊임없는 공포 상태로 몰아넣었다”고 짚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다. 탈레반은 지난해 “아프간이 국제 테러조직의 안식처로 활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미국과 평화 합의를 타결했다. 지난달 정권 탈환 후에는 “보복하지 않겠다”, “여성 인권을 보장하겠다”고도 했다. 이번에는 정말 국제사회로부터 제대로 인정받는 정권이 되고 싶은 건가 잠시 기대했다.

‘정상국가’의 외피를 두른 ‘매력 공세’는 말뿐이었다. 저항군 소탕을 위해 다시 알카에다와 손을 잡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온건파 대신 국제 제재·수배를 받는 강경파가 요직을 차지한 과도정부가 구성됐다.

아프간 시계는 정녕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일까. 서방 동맹군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그간 희생과 투자는 헛된 것이었나. 이 소용돌이는 우리와 무관한 걸까. 비현실적 현실이 재연될 조짐을 바라보면서 드는 의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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