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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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대화는 그 자체가 우리 삶에 기쁨
상대를 알아가는 동시에 자아를 발견하는 길

‘까톡’하는 소리가 들리자 대화를 나누던 상대는 탁자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아, 죄송합니다”라고 말해 놓고도 그 사람은 메시지 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사자는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런 행동은 ‘나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어요’라는 신호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이런 상황을 두고 ‘어웨이(away)’라고 했다. 두 손으로 꼭 움켜지지 않으면 손가락 틈새로 빠져나가는 모래마냥 쉽게 흩어지고 마는 게 대화다.

대화는 어렵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가며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순간순간 판단해야 하는 일이니 꼬부랑 고갯길을 자동차로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 갈 길을 찾겠다고 내비게이션만 뚫어지게 보면 바깥 길을 놓치고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자기 목적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눈앞의 대상을 살피지 않으면 대화도 사고로 끝난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상상으로 구현하는 능력을 일컬어 ‘마음이론’이라고 한다. 인간이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하고 교류할 수 있는 것도 이 능력 덕택이다. 그런데 마음이론 탓에 다른 사람이 말을 하기도 전에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의 말을 예측하려고 든다. 마음을 들어보기도 전에 상대의 진의를 파악했다고 확신하기도 한다. 이런 함정에 빠져 있으면 다이얼로그는 모놀로그가 되고 만다.

대화가 왜 중요할까. 근원적인 이유는, 의사소통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우리 삶에 기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단, 솔직한 대화라야 그렇다. 내면에 숨겨진 진짜 감정을 상대가 정확히 알아차려주면 대뇌 변연계가 활성화되고 쾌감을 느끼게 된다. 속마음을 털어놨더니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해!”라고 수용해 주면,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사회적 승인으로 인식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느끼고 있구나’라며 안도감을 얻게 된다. 대화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려고 애쓰기보다는 타인과 나의 경험 세계가 섞여 가는 과정 그 자체를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

미국 애리조나대학교 연구팀은 대학생 79명의 말을 휴대용 녹음장치로 4일 동안 수집했다. 피험자 한 사람당 300번씩 약 2만3000회의 대화 정보를 행복지수와 함께 분석했다. 연구 결과 행복도가 높은 사람은 하루 동안 타인과 대화하는 데 사용한 시간의 비중이 행복지수가 낮은 이들보다 더 컸다.(39.7% 대 23.2%) 내용과 깊이도 달랐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진솔하고 속 깊은 대화를 두 배 많이 했다. “팝콘 맛있겠다!” 같은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데 사용한 시간도 두 군이 유의미하게 달랐다. 행복지수가 낮은 사람일수록 이런 유형의 대화를 더 많이 했다.

그렇다고 심각한 주제로만 대화하는 것도 좋지는 않다. 가벼운 소재로 말을 이어가면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느낌, 미래로 뻗어가는 인생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풀려 나오면 좋다.

골방에 틀어박혀 혼자 생각만 해서는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못 찾는다. 마음은 말에 실려 입으로 나와야 형태를 갖게 되고, 그것이 타인이라는 거울에 맺혀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내면에 숨겨져 있던 진실을 볼 수 있다. 대화는 그래서 타인을 알아가는 여정인 동시에 자아를 발견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대화의 진짜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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