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둑길에 다닥다닥 붙어 먼발치서 개회식 관람
둑길마저 내빈 차량 출구로 쓰여 아찔한 상황 연출도

“내빈만을 위한 축제인가요? 입장이 제한된다는 사전 고지는 접하지 못했습니다. 이럴 거면 축제 홍보를 왜 하나요?”
지난 8일 오후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부용대 인근. 세계유산축전 개회식과 일 년에 딱 3번 열리는 선유줄불놀이를 관람하기 위해 인파가 몰렸다. 코로나19로 문화생활이 줄어든 시기에 열린 간만의 대규모 야외 문화행사이기에 마스크를 쓴 가족 단위 관객이 주를 이뤘다.
김순자(72)씨 역시 개회식을 즐기기 위해 남편, 첫째아들 내외와 오래간만에 외출했다고 했다. 김씨는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가수가 오늘 개회식에 온다고 해서 바람 쐴 겸 나왔다”면서 “가족과 즐겁게 행사를 즐기다 가겠다”고 개회식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본행사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빈을 제외하곤 개회식 입장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개회식장에는 노란색 출입 제한 띠가 둘러쳐져 있었다. 안전요원들은 “내빈만 입장할 수 있다“며 주민을 통제했다. 이 때문에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는 주민도 있었다.
주민들은 개회식 장소와 30~35m 정도 떨어진 가로 3m가량의 좁은 둑길에 서서 축제를 관람했다. 장시간 서 있기 힘든 노인들이 개회식장에 들어가려다 퇴짜를 맞고 돌아오는 상황도 여러 차례 연출됐다. 무대 오른편으로는 실시간 중계 스크린 한 대가 설치됐지만, 이마저도 높은 나무에 가로막혀 잘 보이지 않았다.
세계유산축전 안동 개회식이 내빈만을 위한 축제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작 축제를 즐기기 위해 하회마을을 찾은 관객은 먼발치에서 행사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9일 안동시에 따르면 이날 개회식 입장이 허용된 내빈은 모두 42명이다. 이중 주민은 7명인데, 이마저도 모두 축전이 열리는 행사장에 사는 하회마을 주민으로 확인됐다.
예천군에서 왔다는 유환길(30)씨는 “계급사회도 아니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내빈들은 준비된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개회식을 보는데 주민은 흙길에서 쪼그려 앉아 개회식 귀퉁이만 보고 돌아왔다”면서 “이럴 거면 축전을 왜 열고 홍보를 왜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정모(32·여)씨는 “개회식장과 내빈 주차장이 코앞에 맞닿아 있더라”면서 “내빈 주차장을 뒀좀 더 멀리 뒀어도 주민들 모두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면서 행사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회식장 뒤편에는 내빈들의 편의를 높이기 위한 내빈 전용 주차장이 행사장과 바짝 맞닿아 있었다.
이를 놓고 안동시는 코로나19 여파로 체온 측정과 안심콜을 완료한 내빈만 개회식에 입장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동시의 이런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주민들은 개회식 행사장 출입을 가로막은 탓에 좁은 둑길에서 다닥다닥 모여 공연을 관람해 사회적 거리두기는 실종됐다. 여기에 주민들 역시 내빈과 마찬가지로 하회마을 입장 전 체온 확인과 손 소독은 물론 안심콜까지 마친 상태였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주민들이 유일하게 개회식을 관람할 수 있는 좁은 둑길은 내빈들의 차량이 빠져나오는 출구로 이용됐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내빈들의 차량이 행사장을 빠져나올 때마다 길을 비켜줘야 해 아찔한 상황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현장 안내도 부족해 처음 축제를 즐기러 온 주민은 메인 행사인 선유줄불놀이를 놓치기도 했다. 선유줄불놀이는 개회식장으로부터 30m가량 떨어진 곳에서 개회식과 동시에 진행됐다. 하지만 개회식이 끝나갈 무렵 선유줄불놀이가 시작되는 줄 알고 멍하니 기다리던 주민이 뒤늦게 선유줄불놀이장을 찾았을 때는 이미 행사가 모두 끝난 뒤였다.
안동시는 주민입장 제한은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안동시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유튜브 플랫폼을 통해 축전 개회식 행사를 실시간으로 방송하기도 했다”면서 “전체 축전 행사에서 있어 개회식은 일부분이다. 주민은 입장시킬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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