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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코로나에 탁발 중단… 수행자 생계 위협”

입력 : 2021-09-07 19:47:30 수정 : 2021-09-07 22: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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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긴급지원 캠페인 나선
NGO 로터스월드 성관 스님

캄보디아 등선 탁발은 수행의 방법
오랜 시간 지켜온 정신과 전통 위협

쌀·라면·비누 등 사찰 24곳에 전달
봉사활동 중 현지 직원 4명 감염도

남의 아픔·고통 등 공감이 가장 중요
작지만 선한 영향력 주는 NGO 희망
지난 6일 경기 수원 보현선원에서 만난 로터스월드 이사장 성관 스님이 동남아 ‘사찰 긴급 지원 캠페인’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수원=남제현 선임기자

‘탁발’(托鉢)은 ‘무소유’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한 불교 정신의 근간이다.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와 같은 불교국가에선 여전히 탁발이 일상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신도들은 매일 아침 탁발을 하는 승려의 공양 사발에 음식을 채우고, 승려들은 탁발로 채운 공양 그릇을 빈민계층에게 나눠준다. 탁발을 거친 음식이 선순환을 이루며 마을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탁발이 중단되자, 이들 지역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제개발 비정부기구(NGO) ‘로터스월드’가 이들 지역에 대한 지원에 나선 배경이다.

로터스월드는 지난 6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에 대한 ‘사찰 긴급 지원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 지역의 열악한 의료환경과 불안한 정치적 상황 속에 탁발까지 중단되자 국내 NGO가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지난 6일 경기 수원 보현선원에서 만난 로터스월드 이사장 성관 스님은 “탁발 중단은 승려와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것은 물론, 전통과 수행을 중시하는 이들 지역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고 캠페인의 취지를 말했다.

―탁발이 중단된 현지 상황은 어떤가.

“현지 사찰에는 적게는 수십명에서 많게는 수천명의 수행자나 주민이 기거하거나 의지한다. 탁발이 중단되면서 승려들이 끼니를 거르는 것은 물론, 지역사회의 노약자나 빈민계층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오랜 시간 지켜 온 정신과 전통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탁발은 수행의 한 방법이다. 그들은 집에 먹을 것을 쌓아두지 않는다. 수행을 하려면 그런 것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불교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탁발 중단을 야기한 코로나19 상황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현지의 열악한 의료환경과 위생수준으로 기본적인 방역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얀마의 경우 쿠데타까지 겹치며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엄중한데, 로터스월드는 현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동남아 지역의 코로나19 상황은 한국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국내에서도 긴장하고 사태를 지켜봤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현지를 오가며 봉사를 하던 국내 활동가들도 발이 묶이면서 지원을 할 수 없게 됐는데, 그 결과 현지 상황은 더 나빠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심각해지는 현지 상황을 마냥 지켜볼 수 없었다. 한국의 직원들은 현지 로터스월드 직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상황을 지켜보며 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그 과정에서 탁발이 중단된 사찰을 돕기로 의견이 모였다. 로터스월드뿐 아니라 전국비구니회가 이번 캠페인에 함께하게 돼 뜻깊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세 차례의 지원은 사찰 24곳, 승려 3850여명에게 전달됐다. 한국에서 준비한 쌀과 라면 같은 식료품부터 비누나 치약 같은 생필품을 주로 보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직원 중 4명이 코로나19에 걸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지원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은 국가별,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다.

“인간이 제아무리 과학문명을 발전시키고 인공지능(AI)을 개발해도 종국엔 바이러스 하나 이기지 못한다. 인간은 단지 세상을 희미하게 알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함께했을 때 불완전한 요소를 줄이면서 참된 삶에 접근할 수 있다. 서로 협력하면서 배려하고 공감해 줄 때 비로소 온전한 삶을 살게 된다. 코로나19는 인간에게 그걸 말해주고 있다. 제아무리 선진국들이 백신을 개발하고 접종을 서둘러도, 백신을 맞지 못한 제3세계 국가에서 코로나19가 창궐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로터스월드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했다.

“2006년에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근에 ‘아름다운 세상 캄보디아 어린이 마을’을 건립했고, 지원 범위를 확대하면서 미얀마와 라오스에 보육시설과 교육시설을 조성했다. 동남아 지역에 인연이 닿은 것은 1986년 도반(道伴)들과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난 것이 계기였다. 당시 캄보디아에서 본 앙코르와트의 비경과 함께 현지의 열악한 생활 환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때 처음으로 ‘기회가 되면 이곳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스스로의 월력을 세웠다. 불교에서 월력은 많은 사람을 위해 행동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의미한다. 그런 선한 다짐은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때가 왔을 때 행동으로도 옮길 수 있다.”

―2004년 활동을 시작한 로터스월드가 20주년을 바라보고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면서 세상에 변화를 주는 파급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 그런 변화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다소 늦더라도 잘못된 길로 가지 말자고 생각했다. 천천히 가더라도 신뢰를 얻어야 이 일도 지속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 좋은 선례로 남기는 것이 목표다. 모든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아픔과 고통, 기쁨, 행복을 공감하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30여년 전 캄보디아를 처음 가서 느낀 것처럼, 진심으로 공감할 때 선한 영향력이 발휘된다. 로터스월드가 세상에서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주는 NGO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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