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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부작은 거뜬히 나올 듯”… D.P. 전역자들이 말하는 실제 생활은

입력 : 2021-09-07 07:00:00 수정 : 2021-09-07 01: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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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잡는 군인’ DP는 희귀조직…전군 200∼300명 수준
외출 자유로워 병사들 선망… 체육 유관 경력자 우대
드라마 뺨치는 무용담… 격무에 트라우마 겪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일을 하는 군인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나도 몰랐고, 탈영병도 모를 것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의 원작 웹툰에서 주인공 안준호는 군무이탈 체포조(Deserter Pursuit)를 이렇게 소개한다. 군인을 잡는 군인, DP는 군필자들에게도 생소한 보직이다. 육해공군을 통틀어 200~300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 속 DP는 다른 병사들과 다르다.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은 채 거리를 누빈다. 얼핏 봐서는 또래의 20대 대학생과 똑같다. 탈영병의 통신 기록을 추적하는 한편 때로는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은 형사와 다를바 없다. 드라마는 현실과 얼마나 비슷할까. 다른 시기에 다른 장소에서 근무했던 DP 출신 전역자 4명에게 직접 들어봤다.

 

◆체육 유관자 우대…‘DP폰‘ 대대로 물려주기도

 

DP는 군사경찰(과거 헌병) 중에서도 탈영병 체포를 전담하는 병사들이다. 선임과 후임 병사 1명씩 두 명이 한 조가 된다. 선임이 전역하면 그 자리를 대체할 다른 병사를 뽑는다. 이때 물밑 신경전이 치열하다. 부대 밖으로 외출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대다수의 병사가 선망하기 때문이다.

 

선발 기준은 부대마다 조금씩 다른 편이다. 대체로 체육 관련 경험이 있는 병사들이 유리하다. 2019년 입대한 김성철씨(25)도 마찬가지다. 현재 검도 선수로 실업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성철씨는 운동 경력이 눈에 띄어 발탁됐다. 2003년 입대한 이규복씨(가명·39) 역시 체육을 전공한 경우다.

 

꼭 운동을 잘해야 선발되는 것은 아니다. 이규복씨는 “2개조 4명이 DP로 활동했는데 머리가 좋은 사람,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 운동을 잘하는 사람 등 일종의 포지션이 있었다”고 말했다. 2010년 입대한 이기인 성남시의원 역시 “DP를 충원할 때가 되면 병사들이나 간부들에게 평판을 물어보고 차출할 인원을 가늠한 뒤 면접을 본다”며 “아무래도 빠릿빠릿한 사람을 뽑았던 편”이라고 떠올렸다.

 

일단 DP로 선발되면 민간인처럼 보이기 위해 사복과 휴대폰부터 마련한다. 항상 야외에서 대기해야 하는 만큼, 배터리 일체형의 최신 스마트폰은 DP에게 독이다. 추가로 구매한 착탈식 배터리 여러 개를 항상 갖고 다녔다는 게 김성철씨의 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D.P.’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과거엔 ‘있는 집’ 뽑기도...탈영 줄면서 출동 횟수도 감소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병사들이 DP로 선발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매달 나오는 활동비는 숙식을 충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란데다 휴대폰 요금 등도 사비로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규복씨는 “당시 매달 1인당 38만원이 활동비로 나왔다”며 “아무리 20년 전이라도 바깥 생활을 하다 보면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엄카’(엄마 신용카드)를 쓰는 DP가 나오는 이유다.

 

활동비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오히려 최근에 입대한 이들이 “활동비가 모자라지 않았다”고 답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2020년에 입대한 박경진(가명·21)씨의 경우 매월 25만원을 받았다. 박경진씨는 “요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문에 출동 횟수도 줄었고, 탈영 건수 자체도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방통계연보에 따르면 군무이탈, 즉 탈영 입건은 2013년 640건에서 2019년 115건까지 감소한다. 이에 따라 최근엔 DP 선발시 경제력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추세라고 한다.

 

소속 사단에서 탈영병이 나오거나, 다른 사단 탈영병의 연고지가 사단 관할일 경우 DP가 나선다. 영장을 발부받아 탈영병의 휴대폰 통신 기록이나 웹사이트 로그인 이력,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 ‘생활반응’을 확인한다. 활동 반경을 대략 추리면 인근의 PC방이나 찜질방에 발품을 팔아야 한다. 이규복씨는 “탈영병의 80~90%는 PC방에서 체포했다”며 “최소한의 비용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차량 추격전에 유혈 사태 일어날 뻔도…90%는 PC방서 검거

 

이 과정에서 드라마 못지않은 무용담들도 나온다. 유흥가에서 며칠씩 잠복하는 경우도 있다. 이기인 의원은 “강원 원주시에서 장군 차를 훔친 뒤 여자친구를 만나러 인천까지 왔던 탈영병이 있었다”며 “탈영병 여자친구 집 앞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해당 차량을 발견하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 쫓아간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한참을 추격하던 끝에 막다른 길에 몰린 탈영병이 차를 세웠다. 이기인 의원과 동료 병사가 창문을 부실 듯이 두드리자 그제야 탈영병은 겁을 먹고 차 밖으로 나왔다.

 

유혈 사태가 일어날 뻔했던 아찔한 경험담도 들을 수 있었다. 이규복씨는 “내가 드라마 작가를 맡았다면 50부작은 거뜬히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탐문 과정에서 탈영병이 만화책을 빌려 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2개조가 교대로 만화방에 잠복했다”며 “식사하러 갔다 오니 다른 DP조가 탈영병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고 했다. 가위까지 휘둘렀던 탈영병을 이규복씨는 물리적으로 제압해 체포했다. 그러나 드라마 속 안준호가 권투로 탈영병을 제압하고 별 탈 없었던 것과 달리, 이 일로 이규복씨는 부대에서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다만, 대부분의 탈영병은 순순히 잡히는 편이다.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탈영을 결심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어설픈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김성철씨는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티셔츠와 바지, 모자를 산 탈영병이 있었다”며 “추적을 막으려고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현금으로 계산한 것 같은데, 현금 영수증을 끊어서 발각됐다”고 말했다. 인근 PC방을 수색하던 김성철씨는 한눈에 탈영병을 찾았다. 탈영병의 바지 밑으로 새까만 군화가 보였기 때문이다. 하필 신발만 사지 않았던 탓이다.

 

다른 병사들이 질투하는 것처럼 DP가 마냥 ‘꿀보직’은 아니다. 한여름과 한겨울에 야외에서 잠복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밤중에 탈영병의 위치 정보가 뜰 때도 있어 숙면도 어렵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탈영병의 시신과 맞닥뜨린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군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탈영병을 체포해 다시 부대로 데리고 오면서, 인간적인 번민에 시달리기도 한다. DP도 그들처럼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백준무 기자 jm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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