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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 불가피” vs “현장 혼란… 시기상조”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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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07 06:00:00 수정 : 2021-09-07 07: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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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학년도 우선 적용 논란

文 핵심공약… 2025년 전면시행 목표
입시경쟁 벗어나 맞춤형 학습에 방점

자질 갖춘 교원 9만명 충원 필요한데
학령인구 줄어 재정 늘리기에는 한계

도농 교육인프라 등 격차해소도 과제
‘3년 내 도입’ 두고 우려 목소리 커져
사진=gettyimagesbank 제공

교육부가 2025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2023학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한 고교학점제를 두고 찬반 여론이 만만찮다.

 

정부를 비롯해 고교학점제 찬성론 쪽은 4차 산업혁명 등 시대 변화에 맞춰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재 양성 교육을 위해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고교학점제는 정부가 당초 2022년부터 도입하려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이다. 반면 양대 교원단체를 비롯해 반대론 쪽은 고교학점제 자체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교육 현장에 엄청난 혼란과 부작용이 예상되는 만큼 2025년 전면 도입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6일 교육부에 따르면 2023학년도부터 일반계고 90%에 고교학점제가 우선 적용된다. 수업은 현행 205단위에서 192학점으로 줄어든다. 학생들은 1학년 땐 국어와 영어, 수학 등 공통과목을 공부하고 이후 원하는 과목을 배우게 된다.

 

현재 중1·중2에게 고교학점제가 적용되는 동안엔 내신이 현행대로 상대평가 방식이 유지되지만 초등 6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2025년에 선택과목의 경우 성취평가제(절대평가)가 적용된다. 고교학점제에서는 성취도가 학점 이수 기준인 40%에 미달할 경우 ‘미이수’ 처리된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미이수 학생을 대상으로 ‘최소학업성취수준 보장지도’를 지원하고 재이수 기회를 제공해 낙오하는 아이가 없도록 교육할 방침이다. 보장지도는 2023학년도부터 공통과목에, 2025학년도부터는 전과목에 각각 도입된다.

◆“고교학점제 도입해야 할 시대” VS “이상과 현실은 달라, 너무 성급”

 

교육부는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학령인구 구성비가 1990년 31.2%에서 2030년 11.7%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쟁 중심의 교육 패러다임이 교육주체 간 협력과 성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생이 학업의 주체로서 진로를 고려해 교육체제를 설계해야 한다. 교육부는 이때 학생들이 적극적·능동적 학습자로서의 책임감을 갖게 되고, 학교는 학생들에게 개별화된 교육을 제공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권오현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인류사회가 학교라는 교육제도를 도입한 것은 출신이나 신분에 따라 차이가 나는 아동, 청소년 세대를 동질화하는 데 있었다”며 “하지만 오늘날 학교의 역할은 학생 각자가 추구하는 바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성장하는 힘을 키워주는 것으로 전환됐기 때문에 고교학점제 같은 교육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월 2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고교교육 혁신 추진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2025년 전면 적용을 위한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 계획’을 발표하면서 “고교학점제는 학생 선택을 존중하는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구체화한 정책으로 우리 교육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2020년 마이스터고, 내년 특성화고, 2025년 일반계고에 도입되는데 특히 일반계고는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만큼 오늘 방안을 바탕으로 학교 현장과 2024년까지 체계적으로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대입제도 하나만 손질하는데도 혼란과 진통이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 초중등 교육 체계는 물론 대입제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고교학점제를 불과 3년 내 차질없이 도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양대 교원단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해 일선 교사 대다수가 2025년 전면도입에 반대하는 이유도 이상과 현실은 다른데 너무 성급하다는 것이다.

◆추가 교원 약 9만명 필요 등 고교학점제 안착까지 산 넘어 산

 

당장 교원 충원 문제가 거론된다. 학생마다 적성과 희망 진로에 따라 듣고 싶은 과목이 다양할 텐데 담당 교원을 충족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어 교사만 해도 2022학년도 중등교원 선발 예정공고에 단 한 명도 없는데, 이는 1997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임호영 전국환경교육과 대학생연합회 전 회장은 “환경교사 채용 역시 올해 0명인 상황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과목을 제시할지 의문”이라며 “(고교학점제 취지대로) 학생들의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려면 다양한 과목의 교사부터 충분히 채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교원수급 관련 쟁점’ 보고서에서 고교학점제의 이상적 정착을 위해 8만8106명의 교사가 더 필요하다고 봤다. 연구진은 “교사의 평균 주당 수업시간은 12시간, 학급당 학생 수 14명을 유지할 경우 학생이 희망하는 교과목을 제공하면서 수업의 질을 관리하는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재정도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9만명에 육박하는 고등학교 교원을 충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에 정부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해 교원 자격이 없는 박사급 전문가가 특정 교과를 한시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 근거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최근 한국교총 설문조사에 참여한 교원의 94.9%가 이 개정안에 반대했다. 조성철 한국교총 대변인은 “정규교원과 교실확충 등 고교학점제 여건 조성을 위해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닌데 무자격 시·기간제 교원 양성부터 추진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고교학점제 취지에는 공감하나, 이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 정규교원 확충방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교원 단체가 정규 교원충원만을 고집하는 건 집단이기주의라는 지적도 나온다. 학생들이 원하지만 정규 교원으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분야나 과목의 경우 자질을 갖춘 외부 전문가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 연구·선도(시범운영) 학교인 인천 명신여고 발명영재반 학생들이 로봇 조립 후 관련 코딩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고교학점제를 일부 시범 적용하고 있는 연구·선도학교조차 우호적인 반응보다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전교조가 지난 7월 일반계고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교원 548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도입 재검토’(65.8%), ‘도입 반대’(26.9%)처럼 응답자 10명 중 9명이 고교학점제 도입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봤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획일적인 입시 위주 학습과 경쟁 부담에서 벗어나 원하는 과목을 잘 배울 수 있도록 한다는 제도인 만큼 내신과 대입전형에서 성취평가제와 학교생활기록부 중심 전형이 필수적이란 의견이 많다. 하지만 2023·2024학년도 고교학점제 단계적 도입 이후 한동안 현행 평가제도와 상당한 비중의 정시(수능 위주)전형이 유지된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고교학점제 도입에 대한 학생·학부모·교사의 인식조사’에서도 응답자 38.5%가 ‘학교교육 방식과 대입제도의 불일치’를 지적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 지역 간 교육 등 사회적 인프라나 학교·교사별 역량 차이에 따른 교육프로그램 수준 격차 확대 가능성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지도 큰 과제로 지적된다.

 

정소영 전교조 대변인은 “방향성에 대해 이견은 없지만 전면도입까지 여전히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 “고교학점제를 적용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한 뒤 도입을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논술·서술형 수능’ 거론… 공정성 확보가 관건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서 대학입시의 대변환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학생이 수업을 직접 설계하는 선택형 교육과정과 상대평가 성적 중심의 현재 입시제도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서는 오지선다형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체제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고교학점제의 성패가 달렸다고 입을 모았다.

 

6일 교육부에 따르면 국가교육회의 등은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이후 2025학년도 고1 학생들이 치를 2028학년도 수능체제 개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교육당국은 우선 논술형·서술형 문제를 수능에 도입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위기다. 교육부 관계자는 “논·서술형을 반영할 방법이나 평가 등을 놓고 고민 중”이라며 “독일의 아비투어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논리나 증거를 갖고 쓴 아이들의 글로 사고력을 보는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논·서술형 시험이 도입될 경우 학생들은 각자 선택한 과목을 통해 배운 내용을 글로써 평가받게 된다. 이 경우 문제 유형과 채점의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할지가 과제다. 김경회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모범답안이 있는 논술문제를 내고, 채점은 두 사람 이상이 동시에 해서 오차가 클 경우 제삼자가 다시 살펴본 뒤 점수를 모더레이션(조정)하는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한다”며 “대기업 입사 서류전형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한 것처럼 데이터가 어느 정도 축적되면 AI로도 채점이 가능하도록 해야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능을 절대평가해 자격고사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권오현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교수는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 대입제도가 학생부종합전형처럼 철저하게 학교교육을 기반으로 운영돼야 한다”며 “수능과 같은 국가수준의 표준화 시험은 전체가 절대평가로 전환해 자격고사로 역할을 수행하고, 대학에 자율성을 보장해 대학별 고사를 치르는 방안도 검토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도교육감협의회 대입제도개선연구단 역시 수능의 절대평가를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는 의견수렴과 함께 고교학점제를 활용하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핀란드, 일본 등의 입시를 분석해 2024년도 상반기, 2028학년도 입시제도를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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