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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행위로부터 한참 후 발생한 손해, 배상받을 수 있을까 [알아야 보이는 법(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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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06 13:00:00 수정 : 2021-09-10 21:4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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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변호사의 ‘쉽게 읽는 화제의 판결’

A는 초등학생이던 2001년쯤 피해를 본 B의 성폭력 범행으로 인해 그로부터 15년 정도가 지난 2016년 처음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A는 2018년 B를 상대로 위 성폭력 범행으로 인한 손해로 위자료 1억 원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대법원 판결(2021. 8. 19. 선고 2019다297137)은 A의 B에 대한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인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민법 제766조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소멸시효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불법행위 청구권과 같은 채권은 법이 정한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손해를 배상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소멸해버리는 한시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대법원은 가해행위와 이로 인한 손해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는 불법행위의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해 장기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은 객관적·구체적으로 손해가 발생한 때, 즉 손해의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때를 의미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같이 불법행위로부터 한참 후에야 손해가 확인된 경우, 손해의 발생이 현실화된 시점을 언제로 보아 10년의 장기소멸시효 기산점으로 삼을지가 문제가 됩니다. 만약 성폭력 범행이 있은 때 이미 손해가 발생했다고 본다면 A가 이 사건 소를 제기한 때는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가 되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A가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PTSD 발현 진단을 받은 때를 손해 발생이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아 이때부터 장기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본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의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으로 보게 되면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 PTSD의 발병 및 진행경과, 아동 성범죄 사건의 특수성 등에 비추어 전문가로부터 성범죄로 인한 정신적 질환이 발현되었다는 진단을 받기 전에 성범죄로 인한 손해 발생이 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고 인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성범죄로 인한 PTSD가 뒤늦게 나타나거나 성범죄 직후 일부 증상이 발생하더라도 당시에는 장차 어느 정도 진행되고 그것이 굳어져 질환으로 진단될 수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성범죄 당시나 일부 증상 발생일을 일률적으로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 즉 소멸시효 기산일로 보게 되면 피해자는 당시에는 장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고, 이 사건처럼 장래에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청구하지 못하게 되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피해자가 이 사건처럼 피해 당시 아동이었거나 가해자와 친족 등 피보호 관계에 있었던 경우처럼 특수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러한 인지적, 심리적, 관계적 특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은 성범죄로 인한 손해의 특성,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에 비추어보더라도 지극히 타당하고 의미 있는 판결로 생각됩니다.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bora.kim@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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