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멋진 술잔이라면 와인잔을 언급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긴 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와인의 색을 그대로 보여주는 투명함과 빛에 따라 변하는 색깔, 그리고 입술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얇은 유리는 와인잔을 더욱 고급스럽게 한다.
그렇다면 와인잔은 언제부터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을까. 와인잔이 실물로 확실히 확인된 것은 고대 그리스다. 바로 킬릭스(kylix)라는 넓은 도자기 잔이 있었기 때문. 당시 와인은 지금과 달리 벌꿀, 송진 등 다양한 허브를 섞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과일 화채와 같은 느낌이다. 내용물이 있다 보니 와인병도 지금과 달리 넓은 입구를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따르기 편하고 섞어 마시기 편한 넓은 잔을 사용한 것이다. 마치 막걸리의 사발과 같은 느낌이었다.
와인잔에 다리가 달린 것은 서양의 식생활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테이블, 식탁을 사용했고, 그러한 입식 문화는 근현대에 이어 계속 보급됐다. 그러다 보니 와인을 따르기 위해서는 일어나야 했고, 이 경우 다리가 긴 잔이 와인을 받기 용이했다.
우리는 삼국·고려 시대만 해도 의자가 있는 테이블을 많이 사용했으나, 조선 시대 전후로 점차 개인용 소반으로 바뀌게 된다. 그 결과 양반다리, 즉 좌식을 많이 하게 됐다. 바닥에 앉다 보니 다리에 불편함, 즉 쥐가 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자주 일어나야 했다. 그때 소반이라도 치게 되면 잔은 넘어지기 일쑤였다. 결국 납작한 잔이 내용물을 보호하기 용이한 상황. 술을 받을 때는 따라주는 사람이 편하게 따라줄 수 있게 팔로 잔을 들어 와인잔의 다리 역할을 팔이 대신했다. 술을 받을 때 잔을 들어주는 예의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다리가 긴 잔이 많았지만 이러한 좌식문화의 결과, 다리가 긴 잔이 적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와인잔은 언제부터 얇아졌을까. 하나의 힌트가 되는 것이 바로 영국의 유리세다. 유리로 된 와인잔은 15세기부터 슬슬 등장한다. 하지만 목재로 열을 내다보니 높은 온도를 내지 못했고 자주 깨졌다. 17세기에 들어서 고온으로 유리를 가공할 수 있었고, 점차 강도가 높은 유리가 나왔다. 근대 와인잔, 와인병은 바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강한 탄산을 품고 있는 샴페인 등은 유리가 약하면 병이 견디지 못했다. 단단한 유리가 개발됨으로써 샴페인의 개발에도 박차가 가해졌다.
재미있는 점은 유리잔이 과거보다 작아졌다는 것이다. 이유는 세금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1696년 명예혁명으로 영국 왕이 된 윌리엄 3세는 국가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창문세를 만든다. 이어 1745년도에는 아예 유리잔세를 부과한다. 결국 와인 잔은 얇아져야 가격 경쟁력이 생기는 상황. 이것으로 유리 업자들은 디자인을 변경한다. 두꺼운 유리 손잡이는 얇아지거나 속이 빈 상태의 제품으로 출시됐다. 참고로 네덜란드에는 집이 넓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게 했는데, 그 기준은 폭이었다. 결국 폭은 좁고, 길이는 긴 네덜란드 스타일의 집이 이때부터 나왔다. 반면 창문 폭에 맞춰 세금을 징수했던 프랑스에서는 좁고 긴 창문 스타일이 나오게 된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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