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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고통에도 오지 않는 구원… 약자들 현실과 마주했죠”

입력 : 2021-09-01 01:00:00 수정 : 2021-08-31 2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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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 ‘개 다섯 마리의 밤’ 채영신 작가

성찰 없는 혐오와 저항의 강대강 충돌
슬픔·혐오가 일상인 母子 시각서 접근
학교폭력·따돌림 등 비극적 현실 그려

대부분의 엄마들 자식에 올인 다반사
등장인물 간의 갈등 시작점으로 작용
예상 못한 파국·극단 선택 긴장감 키워

2010년 단편소설 ‘여보세요’로 활동 시작
많은 작가들 나이가 들면 글 쓰지 않아
박완서처럼 삶의 끝까지 펜 놓지 않을 것

동네 아파트단지 인근 폐가에서 초등학생 남자아이 둘이 잇따라 살해된다. 희생자들의 공통점은 백색증을 앓는 ‘알비노(Albino)’ 세민을 괴롭혔다는 것이고, 살인 혐의로 체포된 사람은 세민을 아껴주던 태권도 사범 요한. 엄마 혜정은 세민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기의 징후를 불안하게 지켜본다.

위기를 몰고 오는 중심에는 세민에게 뒤처지기 시작하면서 혐오를 키우는 급우 안빈이 있다. 안빈과 그의 친구들은 경쟁심과 질투심에 세민을 배제하고 따돌리지만, 자존감이 강한 세민 또한 물러서지 않고 맞선다. 성찰 없는 혐오와 이에 맞선 저항의 강대강 충돌.

“어른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벌어지는 상처가 있는 것을 깨달을 만큼 나이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때론 어른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집요하다.”(13쪽)

안빈 엄마 역시 혜정과 갈등하며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세민의 출생 비밀까지 우연히 알게 된다. 여기에 종말론적 휴거를 신봉하는 에스더까지 세민에게 접근하며 긴장은 더욱 고조된다. 결국 학예회 때 선보일 연극 ‘동물농장’을 둘러싸고 폭발한 갈등은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내달리는데….

평론가 김미현이 “‘이미’ 충분한 고통이 ‘아직’ 오지 않는 구원을 어떻게 소환해야 할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작품이라고 상찬했던, 황산벌청년문학상 제7회 수상작 ‘개 다섯 마리의 밤’(은행나무) 이야기다. 제목 ‘개 다섯 마리의 밤’은 호주 원주민들이 추운 밤이면 개를 끌어안아 체온을 유지했다는 데에서 따온 은유로써, 세민 모자와 종말론 그룹 에스더 등이 겪어야 했던 혐오와 따돌림이야말로 개 다섯 마리를 끌어안아도 견디기 어려운 혹한의 그것이었음을 상징할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서로가 서로에게 혹한의 시간 속으로 끌고 가고 있는 것일까, 작가는 어떤 진실을 본 것일까. 악무한적 주제를 풍성한 인물과 영화를 보는 듯한 리얼한 문체로 끝까지 밀고 나간 채영신 작가를 지난 20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마주했다.

장편 ‘개 다섯 마리의 밤’을 펴낸 채영신 작가는 집필 동기를 묻자 “12, 13년 전 살던 서울 창동에 새로 생긴 아파트가 있었는데, 소설 속의 장소 같은 둔덕 하나가 있었다. 바로 집 앞이어서 매일 갔는데, 그곳에 가면 이런 얘기들이 생각나더라”고 답했다. 남정탁 기자

―따돌림과 혐오의 대상이 된 세민을 알비노로 그린 이유는.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정도는 자신과 달라 차별이나 탄압의 구실로 생각하고, 몇 사람은 어떤 특별함의 징표로 느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알비노를 생각하게 됐다. 어렸을 때 학교에 알비노 남매가 있었는데, 저는 그게 병인지도 모르고, 외모가 신비로워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또 성서 속의 노아가 알비노로 알려져 있어 차용한 것이다.”

―작품 속에서 착했던 안빈 엄마가 어느 순간 괴물이 되는데.

“멀쩡한 사람이 엄마라는 이름을 얻었을 때 괴물이 된다. 저도 아이 둘을 키우면서 엄마 모임에 많이 참여했는데, 그런 모습을 많이 봤다. 저와 만날 때는 좋은 엄마였는데, 자기 아이를 보호할 때 괴물같이 변한 모습을 보기도 했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겠느냐, 라고 하는데, 제가 본 것보다 순화해서 썼다. 안빈 엄마 같은 경우를 결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엄마일 수 있고, 저 자신도 그럴지 모른다.”

―왜 우리 사회에서 엄마들마저 괴물로 돼 가느냐.

“대다수 엄마들이 자식에게 올인하는 경우가 많다. 안빈 엄마의 경우 자기 삶이 만족스럽지도 않고 남편과 소통도 잘 되지 않으니까 안빈에게 더욱 집착한다. 안빈 엄마가 특별하게 모진 엄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평범한 엄마인 것 같다. 저의 둘째 아이가 피아노를 하는데, 아이가 예능을 하면 엄마들은 거의 매니저 수준이 된다. 아이들의 콩쿠르 순위는 엄마들의 순위가 된다. 교육 시스템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 문제와 맞물려 일그러지면 엄마라는 이름마저 추하고 악한 이름이 될 수 있다.”

안빈과 그 친구들의 부조리한 횡포와 따돌림, 강한 승부욕으로 지지 않고 맞서는 세민, 더욱 거세지는 안빈과 친구들의 혐오, 부조리한 세상이 잉태하는 스산한 마음의 풍경들.

“나도요, 내가 성별자라면 좋겠어요.”

“…….”

“그렇지 않으면 너무 말이 안 되잖아요.”

“뭐가?”

“내가요.”

“응?”

“나 자체가……태어나서 지금까지가 다……너무 말이 안 된다고요.”(223쪽)

그는 이 대목을 써내려가다가 그만 울컥 하고 말았다. 세민이라는 아이의 마음이 많이 느껴져서. 차라리 세민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나지 않았다면, 승부욕이 조금 더 없었더라면…. 그는 세민의 마음을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고 했다.

“소설을 쓰면서 아들과 대화를 많이 주고받았어요. 아들과 그런 말도 했지요. 세민이 하나만 제대로 써도 이 소설은 성공한 것이라고.”

―세민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데, 꼭 그래야 했을까.

“제가 만든 인물을 죽여야 할 때는 많이 고민을 하게 되는데, 피치 못하게 그럴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이야기의 큰 틀을 미리 구상하지만 어떤 결론은 정해 놓고 쓰지는 않고, 인물을 다 만들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 인물들이 움직이게 한다. 세민의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은 삶이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종말론적 집단의 암시에 의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어서였는지는 열어두고 썼다.”

―혜정과 안빈 엄마 역시 예상치 못한 파국을 맞는데.

“소설을 구상하면서 처음부터 끝을 생각했다. 세민의 죽음은 처음부터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아픈 엄마가 스스로 죽으면서 복수랄지 이런 것은 처음부터 생각했다.”

―휴거를 믿는 종교 집단까지 가세하면서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는데.

“기독교인이어서 그런 쪽에 관심이 있다. 인물들이 다 천국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 이야기다. 저에게는 자연스런 이야기다. 또 예전에 지존파 사건을 보면서 매우 놀랐다. 지존파 얘기를 단편으로 쓸려고 했다가 쓰지 않았는데, 지존파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하면서 일부 내용을 녹여 썼다.”

―이번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

“사실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잔인함은 약한 자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 세상에는 울면서 강하게 사는 자가 많다’는 황현산 선생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아서 책상 앞에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놓고 소설을 썼다. 처음부터 악한 존재로 태어나서가 아니라, 세상에 맞서면서 살다 보니까 자기의 약함이 악함이 되는 것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 독자들이 남에게 상처 주는 것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저는 평소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세대간, 남녀간 갈등도 측은지심이 없어서 생기는 측면도 있다.”

‘작가의 말’에서 “나 자신이 폐가가 되고 쓰레기로 뒤덮인 묵정밭이 된 뒤에야 이 소설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적은 그는, 어느 인터뷰에선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태복음’ 5장 3~10절)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수원에서 자란 채영신은 2010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여보세요’가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로 ‘필래요’(2020), ‘개 다섯 마리의 밤’(2021), 소설집으로 ‘소풍’(2020) 등을 펴냈다. 2014년에는 단편 ‘4인용 식탁’으로 ‘젊은 소설’(문학나무)에 선정됐다.

“박완서, 조정래 작가 등을 좋아합니다. 글도 잘 쓰시지만, 그런 이유를 떠나서 끝까지 쓴다는 점 때문이죠.”

앞으로 어떤 작가,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자, 그는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해보진 않았다면서도 확고한 지향과 열정을 담은 대답을 들려주는데.

“많은 작가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글을 쓰지 않지요. 그 마음 이해도 가요. 요즘 20, 30대 작가를 보면 발랄하고 재능도 뛰어나서 무슨 말을 더 얹을까, 저 같아도 엄두가 나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박완서 작가는 작고할 때까지 펜을 놓지 않았지요. 저도 죽을 때까지 글 쓰는 작가로 살고 싶어요, 그렇게 기억되면 좋겠고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3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간 그는 씩씩하게 도심의 빌딩 숲 사이를 헤치고 자신의 길을 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단단하게. 기자는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야 했다, 삶의 비루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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