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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저물었다”… 42년 서울극장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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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31 15:00:00 수정 : 2021-08-31 15: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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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영업일인 31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울극장 매표소에 티켓 판매가 마감됐음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다.

“나는 30년 이상 이 극장을 다녔어요. 이젠 문을 닫는다고 하니 섭섭한 마음이 커요.”

 

31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서울극장에서 만난 한계환(79)씨의 목소리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이날을 끝으로 문을 닫는 서울극장은 한씨에겐 각별한 장소였다. 70년대 같은 자리에 있던 ‘세기극장’에서부터 한씨는 이곳의 단골이었다. 최근까지도 친구들을 만나기 위한 약속 장소는 언제나 ‘서울극장 앞’이었다. 한씨는 “반평생을 함께 했던 곳이 사라진다고 하니 허망하다”며 “점점 갈 곳이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42년 한 자리를 지켰던 서울극장이 문을 닫는다.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 사이에서도 살아남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난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오랜 세월 극장과 함께해온 관객뿐 아니라 또 하나의 독립영화관을 잃게 된 관객들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영업 마지막 날인 이날 서울극장 매표소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영화를 예매하려는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극장이 지난 11일부터 평일 하루 100명에게 선착순으로 제공하는 무료 티켓을 받기 위한 인파였다. 티켓 배부는 9시30분부터 이뤄졌지만 한 시간 전부터 관객들이 몰렸고, 150명 이상이 긴 줄을 서기도 했다. 무료 티켓을 제외하고도 이날 오전까지 대부분의 영화 좌석표는 모두 팔렸다.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매표소 앞에 티켓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영화관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는 사람들도 많았다.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해왔다는 장상일(60)씨는 영화관 곳곳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았다. 장씨는 “20대부터 서울극장을 다녔다”며 “개인적인 추억도 있고 영화사의 한 시대를 마감하는 기록 자료로서 영화관을 영상으로 담고 있다”고 했다.

 

극장 바깥에서 외관을 찍고 있던 김모(56)씨도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서 서울극장에 왔었다”며 “70년대 재개관 때부터 왔는데 종로에 남은 극장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있다. 상징적으로 남은 서울극장마저 사라지니 한 시대가 진짜 끝났다는 걸 실감 나게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대한 추억은 많지 않지만 하나의 독립영화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컸다. 인근의 한 대학에 다닌다는 박진아(24)씨는 “독립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있어 슬프다”며 “대형 멀티플렉스만 남아 티켓 값은 비싸지고 영화의 다양성은 떨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 매표소 앞에 영화 관람을 대기하는 사람들이 좌석에 앉아 있다.

종종 독립영화를 본다는 임수진(27)씨도 “서울극장은 재개봉 영화가 많았고 다양한 영화를 상영해줬다”며 “다른 독립·예술영화 상영관들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1978년 9월 단 하나의 상영관만을 갖춘 채 개관한 서울극장은 이후 스크린을 늘려 총 11개 상영관을 갖추며 국내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성장했다. 1980·90년대 한국 영화 부흥기에는 종로3가에 자리한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과 함께 영화의 메카로서 자리 잡았다. 2013년에는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래 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극장 운영사인 합동영화사는 영업을 종료하면서 영화에 국한되지 않은 콘텐츠 투자 및 제작과 새로운 형태의 극장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다만 극장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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