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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경제원리 무시한 정책 밀어붙이기… 국민 분열 초래” [황용호의 一筆揮之]

관련이슈 황용호의 일필휘지

입력 : 2021-08-28 08:00:00 수정 : 2021-08-27 20: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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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비서실장 역임 임태희 한경대 총장

현 정치를 보는 소회
일자리창출·투자는 기업이 할 일
‘큰정부’가 다하면 결국 후대에 짐
편갈라 정책 밀어붙이기 안돼
4.0시대에서 정치만 2.0버전

어떤 비서실장이었나
아마추어가 이끌 나라 규모 아냐
여당이든 야당이든 자질·역량 중요
소리내거나 보이지 않지만 무한책임
커튼 앞이 아닌 뒤에서 머무는 역할

총장으로서 다짐은
국가·사회서 받은 혜택 보답해야
변화물결 앞에 놓인 대학 상황 엄중
미세먼지·기초환경·에이징 테크 중심
고령화·일자리 문제 해결 앞장설 것

임태희(65) 국립 한경대학교 총장은 늘 겸손하고, 말보다 행동을 앞세운다.

임 총장은 제1야당 당대표 비서실장과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 대통령실장을 하며 한 번도 우쭐대거나 거들먹거린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부나 정치권에서 힘있는 자리를 꿰차면 대부분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완장’을 찼다는 것을 으스대곤 한다. 그러나 임 총장은 ‘문고리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비서실장 시절, 완장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외부에 표시를 내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임 총장이 2003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비서실장을 맡았을 때, 최 대표는 출입기자들에게 “권익현 전 민정당 대표가 사위(임 총장)를 잘 봤다”며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그의 겸손함은 정치권에서 흔하지 않은 네 차례의 비서실장에 발탁된 동인이 된 듯하다. 그는 “비서는 커튼 뒤에서 목소리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일을 해야 하며,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로 자기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이어 “정치는 말로 시작하나 정책으로 끝난다. 말하는 사람이 많고, 말에 책임을 안 지는 게 우리나라 정치풍토”라며 “정책은 실천이다. 공직자 출신으로 말보다 정책 실천에 역점을 두겠다고 결심하며 정치를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노동부 장관 재직 때 둘째 딸 결혼식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치른 일도 그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지난 23일 경기도 수원 한경대학교 경기친환경농업연구센터에서 임 총장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임태희 한경대학교 총장은 지난 23일 경기도 수원 한경대학교 경기친환경농업연구센터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국정의 중심에서 여러 분야를 옮겨가며 오랫동안 경험한 일은 개인적으로 영광이며,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다”며 “공익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남제현 선임기자

―3선 의원, 장관, 대통령실장에 이어 대학 총장을 맡은 소회는.

“영광과 책임을 느낀다. 중요한 직책, 그것도 국정의 중심에서 여러 분야를 옮겨가며 오랫동안 경험한 일은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입었다. 보답해야 하지 않겠는가. 공익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책임을 느낀다.”

―대학 총장 하며 우리나라 대학 실태를 파악했을 텐데.

“우리나라 대학은 예외 없이 혁신, 변화하지 않으면 심각한 상황에 놓인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대학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위기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대학이 보수적이라 사회 흐름을 거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의 역량을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못하고 졸업시키는 게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이다.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기업을 중심으로 4.0시대로 가고 있는데 대학은 앞서가는 곳이 3.0시대, 그렇지 않은데는 2.0시대에 머무르고 있다. 개혁이 꼭 필요하다.”

―대학 총장으로서 보람 있는 일을 꼽으면.

“국회의원 한 분이 독립적인 헌법기관이듯 교수님도 개개인이 독립적이다. 교수들이 여의도 정치인보다 자존감이 더 강했으나 전문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고집 등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마음을 열고 교수들과 소통하고 학교 일에 열중했더니 좀처럼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분들이 발벗고 나서며 협조했다. 참고 기다리며 교수 개개인의 자존감을 인정해 주고 영역을 존중했더니 효과가 있었다.”

―고시 합격 후 재경부 과장으로 있다가 총선에 출마한 계기는.

“공무원 시작할 때는 정치할 생각이 없었다. 1996년부터 정부가 보내줘 영국에서 2년간 유학하며 정치에 의해 사회가 변화되는 것을 보고 정치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또 무한토론을 하는 영국 정치인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토니 블레어 정부가 1997년 5월에 출범했는데, 블레어 총리는 나라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비전, 그것도 아주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했다. 그는 취임 후 교육개혁 구상을 밝히며 세 가지 사업에 역점을 두겠다고 천명했다. 첫째, 수학과 과학교육을 늘려 영국이 정보화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둘째, 컴퓨터를 연필처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교육하겠다고 했다. 셋째, 교육은 학교가 100% 책임질 수 없다며 가정, 사회가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영국 정부가 미래를 준비하고, 국민을 설득해 제도를 바꾸고, 생활개선을 위해 서비스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이 진정한 정치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정치에 매력을 느꼈다. 1998년 귀국 후 청와대에 파견 근무를 했다. 1997년 말에 터진 외환위기 수습과정에서 IMF 원인을 분석하고 대처하면서 한국 정치가 영국과 너무 비교됐다. 국민은 결혼반지까지 팔아 IMF 극복을 위해 힘을 합치는데 당리당략에만 매몰된 정치를 보며 행정부 공무원으로서 치솟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김대중정부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했다.

“그땐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당시 장인어른(권익현 전 민정당 대표)은 야당인 한나라당 부총재였다. 주변에서 아무런 말이 없어 내가 먼저 장인어른이 야당의 중진의원인데 여기(청와대) 와서 근무해도 괜찮냐고 얘기했다. 강봉균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 ‘그게 무슨 상관이냐. 공직자는 본분에 충실하면 된다’고 했다. 공무원은 자질과 역량이 중요하다.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게 기준이 돼야 한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비서실장을 네 차례 했다. 비결은.

“정치에 입문하며 어느 직책을 맡든 정책과 실천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다. 당 정책조정위원장, 대변인, 여러 비서실장직을 수행하며 그 기조를 유지했더니 ‘공무원 하지, 뭐하러 정치하나’라는 말이 주변에서 나왔다. 흔히 정치는 자기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자기 정치를 하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하고, 그것도 상대와 싸우는 말을 해야 한다. 자기 정치는 싸우는 정치와 다름없다. 비서실장을 오랫동안 하며 상대적으로 그런 기회를 덜 가진 것도 영향이 있다. 비서실장 자리는 실장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당대표가 말씀하도록 해야 하고, 커튼 앞보다 커튼 뒤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 비서실장을 하며 주연은 대통령, 당대표이고 나는 조연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대통령이나 당대표는 국민의 대표 역할을 해야 하므로 가급적 국민의 눈으로 보고, 국민의 귀로 들으며, 국민의 위치에서 말씀을 드렸다고 자부한다. 대통령께 건의해 정책을 바꾸도록 노력해야지 그것을 하지 않고 자기가 건의를 드렸다는 식으로, 바꾸라고 했는데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외부에 말하는 순간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이다.”

―대통령 비서관으로 바람직한 자세는.

“대통령실장 때 비서실 직원에게 세 가지 사항을 강조했다. 첫째, 목소리를 내지 말자(voiceless). 의견이 있으면 대통령이나 내각이 목소리를 내게 하고, 비서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 얼굴을 드러내면 안 된다(faceless). 정치인은 언론에 보도되는 것을 좋아하나 비서는 언론에 노출되면 안 된다. 셋째,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현안을 건의했으나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이 국민적 비난을 받으면 잘못 모신 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문재인정부를 평가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등 국정운영 경험을 많이 해 적잖이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다. 정치권은 사회적으로 꼬인 문제를 푸는 역할을 하고, 여야 간에 조성된 갈등은 대통령이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16대 국회 초선 때 당시 여당인 새천년민주당 김원길 의원이 나를 포함해 젊은 야당 후배의원을 초청해 저녁을 하며 격려한 일을 기억한다. 또 2001년 야당인 한나라당 정책조정위원장 때 경제가 무척 어려워 추경을 편성하며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연수원에서 여·야·정 당국자들이 1박2일 워크숍을 해 박수를 받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정치부문에서 지금보다 더 국민이 분열되고 여야 간 갈등이 심하고, 증오에 가득 찬 말을 서로 상대에게 퍼붓던 적이 있었나. 또 정부가 경제원리를 무시한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투자하고 이익을 창출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해야 할 정부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개인은 돈을 벌면 저축하고 소비하는 층으로 소득을 올려 잘사는 게 꿈인데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나. 특히 큰 정부를 만들어 씀씀이를 늘려 다음 정부와 후대에 짐이 될 것이다. 일자리는 기업이 창출해야 한다.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면 결국 국민에 부담이 간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미국, 일본과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동안 한·미·일 우호관계의 틀 위에서 경제 발전과 외교를 추진해 왔다.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이런 틀을 바꾸면 안 된다. 진보 정권이 약자를 보호하고 환경은 개발보다 보존에, 성장보다 분배에 역점을 두는 게 당연하다. 이런 의제는 전문가 집단의 토의와 국민적 공감대 과정을 밟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원리를 무시하고 토의를 생략한 채 편을 갈라 국가정책을 밀어붙였다.”

―내년이 대선이다. 국가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은.

“국정 현안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과 해결할 나름의 철학과 소신이 있어야 한다. 양극화, 부동산 문제, 지방과 수도권, 농촌과 도시, 정규직과 비정규직, 세대별, 젠더 갈등 등을 파악해 구체적으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래과제를 해결할 역량이 있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시대, 남북문제 등에 대한 창조적 해법이 있어야 한다. 준비 없이 하면 개인은 물론 국가도 불행해진다. 대한민국은 면적은 적지만 국가의 규모는 크다. 아마추어가 대충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지도자는 많이 듣고 포용해야 한다.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자기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얘기를 경청해야 한다.”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한국 정치는 2.0시대에 머무르고 있다. 세력화, 진영논리는 2.0시대의 정치다. 2.0시대는 고체시대로 덩치가 커야 힘이 세 보였다. 지금은 액체시대로 바뀌었고, 국민은 4.0시대로 넘어갔다. 2.0시대의 시각으로 4.0시대의 문제를 풀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정치도 액체시대로 변해야 한다.”

―향후 계획은.

“총장 취임 후 미세먼지, 기초환경, 에이징 테크(Aging Tech) 세 가지 부문을 주요과제로 선정해 중점적으로 추진했고,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미세먼지 저감과 기초환경 개선작업은 국가적 과제로 지속적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고령화 문제를 복지정책으로 대응해 왔으나 에이징 테크 산업을 키우면 신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 에이징 테크는 고령자 삶의 질을 높이는 기술을 통칭하는 말로, 에이징 테크 산업을 발전시키면 젊은 층에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중·노년층에게는 평생 쌓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새 일거리를 줄 수 있다. 세 가지 의제를 통해 국가와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 임태희 총장은… ●1956년 경기 성남 출생 ●서울 경동고, 서울대 경영학과 및 동 대학원 경영학과 ●행정고시 합격(24회) ●재정경제부, 대통령비서실 근무 ●영국 옥스퍼드대 객원 연구원 ●제16, 17, 18대 국회의원(경기도 성남 분당) ●한나라당 정책조정 위원장(경제정책담당) 대표 비서실장, 대변인, 원내수석 부대표, 여의도연구소장, 정책위 의장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 대통령실장 ●노동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대한배구협회 회장 ●한국정책재단 이사장 ●한경대 총장(현)

황용호 선임기자 drag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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