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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맛을 낼지는 신만이 아신다 [박영순의 커피 언어]

입력 : 2021-08-28 17:00:00 수정 : 2021-08-27 19: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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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맛은 로스팅과 추출기교보다는 열매에 맺힌 씨앗의 품질에 좌우된다.

“커피의 맛이 품종에 따라 다른 것인지”를 묻는 분들이 많아졌다. 항간에 가공법에 따라 맛을 달리 낼 수 있다는 현란한 말들이 요란하다 보니 갖게 되는 궁금증이겠다. 소비자들이 이런 의문을 갖는 것은 사실 반가운 일이다. 커피를 선택하는 데 원재료의 출처와 품질을 따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품종에 따라 한 잔의 커피 맛이 달라지는 것은 자명하지만, 어느 정도 다르게 되는 것이냐고 되묻는다면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음료로서 커피의 맛은 생두에 들어 있는 향미 전구체들의 조성에 따라 달라진다. 커피를 볶는 사람들은 로스팅에 따라 맛이 좌우된다고 일갈하고, 일부 바리스타는 사용하는 물의 질이나 커피가루와 물을 만나게 하는 방법에 따라 완전히 다른 커피가 될 수 있다고 우긴다. 하지만 원재료인 커피 생두 앞에서는 모두 허망한 외침일 뿐이다.

사과를 아무리 매만진다고 해서 복숭아가 될 수 없다. 한 광주리 가득 먹을거리를 주고 맛만으로 같은 것끼리 가르라면 어렵지 않게 사과, 복숭아, 아몬드, 커피, 홍차 등을 구별해 낼 수 있다. 맛이란 ‘나’와 ‘타자’를 구분짓고, ‘우리’를 규정하는 정의이다. ‘우리’ 속에서도 맛은 서로 다름을 구분짓는 섬세한 경계가 된다. 로스팅이 드라마틱하게 맛을 바꾸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태우거나 덜 익게 할 때이지 적절한 범위 내에서 로스팅을 한다면 특정 품종이 지닌 커피의 맛을 다른 것인 양 바꾸기는 불가능하다.

커피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맛의 속성, 그것을 빼면 커피가 아닌 게 되는 향미의 정체성을 ‘본성(nature)’이라고 부른다. 커피테이스팅의 가치는 산지나 품종에 따라 본성이 어떻게 다르게 드러나는지를 비교해 감상하는 데 있다. 커피 생두를 구성하는 성분들이 아라비카종과 카네포라종이 뚜렷하게 다름을 커피학 개론에서 다룬다. 아라비카종에는 티피카. 버본, 게이샤, 카투라, 루메 수단 등 다양한 맛을 발휘하는 품종들이 있다. 그렇다면 아라비카종으로 분류될 만큼 같은 성분들로 구성된 이 커피들은 어떻게 다른 향미를 피워내는 것일까?

그것은 관현악단에 비유해 답할 수 있다. 악기의 구성은 같지만, 오케스트라가 연주해 내는 선율의 다채로움은 무한대이다. 악기(생두의 성분)를 당초 어떻게 구성하느냐가 음악의 결을 결정한다. 다음으로 곡을 달리 느끼게 하는 것은 지휘자의 해석(로스팅)과 이에 따른 연주자의 기교(브루잉)이다. 한 차선을 달리는 승용차로도 설명할 수 있다. 로스팅과 브루잉이 끼치는 커피 향미의 변화는 차선을 넘어설 수 없는 범위 안에 있다. 제아무리 뛰어난 손재주라도 차선을 벗어나질 못한다. 향미적으로 다른 톤(tone), 노트(음표), 뉘앙스(nuance)를 감상하려면 커피를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해야 차선을 바꿔 새로운 영역을 달릴 수 있다.

커피 씨앗에 어떤 맛이 깃들지는 신의 영역이다. 산지에서 만나는 재배자들에게 “올해 커피 맛은 어떨 것 같냐”고 물어보면, 한결같이 “오직 신만이 아신다(Only God knows.)”며 하늘을 우러러본다. 로스팅이나 브루잉 과정에서 맛이 달라지는 것은 단지 표현의 영역이다. 인간은 맛을 창조할 수 없다, 신이 주신 영역 안에서 본성을 드러내는 양상을 다르게 할 뿐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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