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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인문정원] 노자 읽기를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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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20 22:29:32 수정 : 2021-08-20 22:29:31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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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세의 원칙과 방법 바로 세워줘
‘무위’는 삶의 피로에 대한 처방

숲에서 우는 매미 소리의 기세가 약해졌다. 매미가 맹렬하게 울어 젖히고 태양이 공중에서 타오르던 여름이 끄트머리에 와 있다. 단 한 번의 여름이 지나간다. 여름이 끝날 무렵 우리가 누리던 일상의 달콤함은 씁쓸해지고, 어떤 우정은 느슨해지며, 삶의 낙관은 돌연 비관으로 기운다. 은하수와 별이 가득 뜬 밤에 우리는 먼 미래를 호출한다.

 

지금 살아 있는 누구도 인류세 저 너머로 뻗친 알 수 없는 미래에 도착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미래가 가장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시간은 정작 미래가 아니라, 지금이다.”(김홍중) 무인도를 갈 때 책 한 권을 가져간다면, 나는 기꺼이 노자의 ‘도덕경’을 들고 가겠다. ‘도덕경’을 처음 읽은 뒤 가슴에 벅차오르던 기쁨을 잊을 수가 없다. 혼자 사는 것의 고적함에서 벗어나고자 손에 든 책에서 나는 뜻밖에도 어떤 광맥을 찾은 듯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그 흥분과 떨림은 스무 해 넘은 세월 저쪽의 일이 되었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장석주 시인

노자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이다. 사마천에 따르면 노자는 주나라의 장서를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날 국가 문서를 관리하는 사람, 혹은 국립도서관의 관장쯤 될 것이다. ‘도덕경’은 ‘도’와 ‘덕’에 관한 노자 철학의 집약이다. 도는 형체도 없고 형상도 없다. 도가 우주의 본질이라면, 자연은 도의 구현체이다. 덕은 도의 방법적 실천이고 그 활용이다. 노자는 도가 무너지고, 덕이 자취를 감춘 당대의 혼란을 염려하여 처세의 원칙과 방법을 바로 세울 절실한 필요에 응해 이런 가르침을 펼쳤으리라.

 

노자의 반어(irony)와 모순어법으로 이루어진 아포리즘들, 이 형이상학적 경구를 집약한 ‘도덕경’을 나는 혼란스런 세상을 헤쳐 나가는 삶의 기술이자 치세의 원리, 즉 통치의 조언을 담은 제왕학으로 읽었다. 노자 철학의 바탕은 도와 덕이고, 무위는 이것의 방법적 실천이다. 도를 따르는 방법은 무위에 처하는 것이다. “무위를 행하라”라는 것은 하지 않음을 일삼으라는 뜻이다. 무위란 곧 ‘무위자연’이다. 무위란 무엇을 이루고자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다. 노자 철학은 자연을 모범으로 제시하고, 무위를 가장 좋은 삶의 형식이라고 말한다. 무위는 ‘고요의 동학’(動學)이다.

 

산을 등지고 큰물(저수지)을 눈앞에 둔 시골에 살 때 나는 자주 고요 속에 머물렀다. 몸을 부려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 속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태가 아니라 부지런함이다. 하지 않음에 부지런한 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예로부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태도는 널리 권장되는 것이었다. 동양에서 무위는 한가로움에 처하는 것, 제 삶을 유유자적하는 것 따위를 품는다.

 

롤랑 바르트는 이 무위가 “외면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삶에 대한 욕망, 싸우지 않는, 그 어떤 변화도 지향하지 않는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바르트는 무위에 씌우진 애매모호한 베일을 걷고, 그것이 “일종의 겸허한 수동성, 자기 자신의 절대, 드러내놓고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으로 되돌려진 내면성, 거기에서 재발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 우리에게 무위가 필요한가? 내 생각에 이것은 노동의 수고와 삶의 피로에 대한 처방이다. 무위는 제 존재를 필요 이상으로 소모하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한 일체의 수탈을 멈추고, 초월적 수동성에 가만히 머무는 것이다. 이것의 목적은 자연과의 조화에서 삶의 여유를 누리고자 함, 즉 제 안의 정기가 흩어지는 것을 막고자 함이다.

 

‘도덕경’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읽히는 동양 고전 중의 하나다. ‘도덕경’은 고대 동아시아에서 성립된 지혜의 철학이고, 지적 콘텐츠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이 동양적 지혜의 집합이 오늘의 삶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느낀다. 그 유효성은 현실에서 써 먹을 수 있음, 즉각적인 쓸모, 즉 자기계발의 실용성에 있지 않다. 노자 철학이 기초 교양으로 삼는 도와 덕, 자연과 무위 따위는 오늘날 쓸모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이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정신의 처방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일독을 권한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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