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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현명한 사람은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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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18 23:21:33 수정 : 2021-08-18 23:21:31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 인지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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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사실·감정 경험의 산물
행복했던 일만 남길 수는 없어
고통스러웠던 순간 극복 통해
내적 성장 계기 활용 지혜 필요

우린 생활 속에서 기억에 대한 상반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예를 들면, 수업시간 선생님으로부터는 “아니 그걸 배운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 까먹는단 말이냐”라고 혼나고, 빌려준 빵값 갚으라고 하면 친구는 “쪼잔하게 그걸 아직도 안 까먹었냐”고 타박을 한다. 이러니 기억을 해도 문제, 기억을 하지 못해도 문제다. 그럼 기억은 과연 뭘까?

우리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고, 이에 학습과 기억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습이란 외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기능이고, 기억은 습득한 정보를 필요할 때 활용할 목적으로 저장하고 소환하는 기능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다운 것은 다 우리가 기억하는 주관적 경험 때문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기억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교수 뇌·인지과학

그래서일까. 우리는 기억력을 유지하는 것에 매우 예민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우리 뇌 속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가 손상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의지에 반해 기억은 소실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치매 등과 같은 뇌질환의 빠른 증가는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로 인해 많은 연구자가 기억력 유지나 인지저하를 치료하기 위한 약물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 한편에는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있다. 큰 정신적 충격을 수반하는 사고나 사건을 겪은 뒤 심적 외상을 받아 나타나는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PTSD라 하면 천재지변이나 전쟁과 같이 큰 일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나 직장에서의 집단괴롭힘 혹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도 원인이 된다. PTSD로 고통받는 분은 치매로 고통받는 분과 달리 특정기억을 지우는 약물이나 시술 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기억은 사실경험과 감정경험이 어우러진 하나의 사건으로 우리 뇌에 보관되며, 강한 감정 경험이 동반된 기억은 더 강렬한 기억으로 보관된다. 로이스 로리의 SF소설, ‘기억 전달자’에서 이를 잘 묘사한다. 이 소설에서 미래 인류는 인류 역사 속 고통스러운 기억을 모두 지우고 사는데, 오로지 ‘기억 보유자’만이 인류의 과거 역사를 기억한다. ‘기억 보유자’는 때가 되면 ‘기억 전달자’가 돼 다음 세대 ‘기억 보유자’에게 기억을 전달해주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때 ‘기억 전달자’는 사실에 대한 기억을 전달하는 것보다 감정을 되찾도록 도와준다. 에피소드에 담긴 감정을 경험하고 공감하도록 한다. 덕분에 다음 세대 ‘기억 보유자’는 그 에피소드의 기억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강렬하게 경험한다. 인류 역사는 오래 남기고 싶은 기억과 빨리 지우고 싶은 기억 모두 공존하기 때문에 ‘기억 보유자’는 기억을 전수받는 과정 내내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행복한 기억과 고통스러운 기억 모두 가져가는 것을 받아들인다.

정신과 의사이며 정신분석학자였던 토마스 사즈 박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바보는 용서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다. 그리고 보통 사람은 용서하고 잊는다. 그런데 현명한 사람이라면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 용서의 과정은 감정과 이성의 기억 모두를 소환한다. PTSD로 고통받는 분 중에서 이를 극복하고 오히려 내적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보고됐는데, 이런 경우를 외상 후 성장(PTG)이라고 한다. 기억 속 사실경험과 감정경험을 분리시키고, 감정경험을 내적성장의 계기로 활용하는 지혜를 터득한 경우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을 추모하는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 앞의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라는 비문은, 그곳을 방문하는 유대인에게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사실 기억은 강화해 잊지 말되, 증오와 같은 감정은 용서라는 과정을 통해 정화하라는 지혜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 광복절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온 뜻깊은 광복절이었다. 앞으로 광복절은,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독립을 위해 수고하다 타지에서 순국하신 분의 숭고한 기억을 봉환하는 날이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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