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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백정 자홍 배롱나무 꽃 화려하고 농염한 유혹에 빠지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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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14 15:00:00 수정 : 2021-08-14 14: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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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힐링 즐기는 장흥여행/고영완 고택앞 200여년전 만든 연못 송백정에 자홍색 배롱나무 꽃 활짝/바람불어 자홍 꽃 날리니 연못도 자홍으로 물들어/천년고찰 보림사 비자림숲·정남진 편백나무숲 마음에 ‘쉼표’ 찍다

 

송백정 배롱나무

원시림 같은 짙푸른 녹음 사이로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고택. 바람이 불자 울창한 대나무숲은 “사각사각”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고택 앞을 지키는 노거수를 보세요. 죽도록 사랑해 평생 떨어지지 않는 연인 같지 않나요.” 뿌리와 몸이 한데 엉킨 연리지 느티나무는 사람보다 더 다정하게 서로를 안고 있다. 고택앞 연못에는 푸른 하늘 담기고 배롱나무 병풍처럼 둘러섰다. 장흥 상선약수마을 송백정에 바람 부니 농염한 배롱나무 꽃잎 연못 위로 흩날려 물색도 농염한 자홍으로 물든다.

 

송백정 배롱나무

#배롱나무 꽃, 그 화려하고 농염한 유혹

 

물처럼 살 수는 없을까. 커다란 바위에 부딪히고 길은 굽이굽이 휘어져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흐르고 흘러 결국에는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물. 모두에게 이롭지만 공을 탐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을 낮추며 흐르기에 노자는 ‘도덕경’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며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나 보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평화리에는 도덕경에서 이름을 딴 상선약수마을이 있다. 상선약수샘, 서당샘, 중샘, 정자샘 등 다양한 샘물이 남아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송백정 배롱나무
송백정 배롱나무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늠름한 메타세쿼이아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오솔길이 여행자를 신비로운 풍경으로 이끈다. 억불산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 신선의 세계에 들어선 듯 신비롭고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하다.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처럼 바람에 느릿느릿 흔들리는 울창한 대나무숲과 아담한 연못 송백정의 배롱나무 덕분이다. 멋대로 구부러지며 자란 배롱나무 가지 끝은 매혹적인 자홍빛 꽃이 무성하게 달렸다. 초록 개구리밥으로 덮인 연못과 파란 여름하늘까지 궁극의 조화를 이루는 풍경이라니. 무릉도원인 듯, 꿈인 듯 비현실적인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배롱나무 꽃은 7월 말쯤 피기 시작해 10월까지 백일 동안 피고지고를 반복해 ‘백일홍’이라 부른다. 올리브기름을 바른 듯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배롱나무는 몸통을 간지럽히면 가지 끝을 파르르 떨며 사람과 교감하는 신기한 나무다.

 

고영완 고택 대나무숲
 고영완 고택 느티나무 연리지

송백정은 정자가 아니라 독립운동가 고영완의 고조부인 고언주가 200여년 전 만든 연못. 고영완이 1934년 규모를 대폭 확장하고 배롱나무 50여그루를 심었는데 9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고조부가 연못 한가운데 심었던 소나무, 동백나무와 어우러지며 여름과 가을에 몽환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연못이 됐다.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이고 있는 근처 고영완 고택(무계고택)은 아들 고병천씨가 지킨다. 원시림처럼 짙푸른 녹음과 어른 허벅지 굵기의 대나무가 빽빽한 숲속에 고택의 담장과 대문채가 이어진다. 이끼 낀 돌담과 옛 담장이 예사롭지 않고 울창한 노거수들과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전통정원을 보여준다. 대문채 앞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나무와 뿌리가 한데 엉켜 있는 연리지로 자라며 고택이 지나온 오랜 시간을 전한다.

 

고영완 고택
고영완 고택

고언주가 정화사 절터에 1839년(헌종 5) 지은 고택은 남부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一’자형 구조로 경사가 급한 땅에서 건물을 올렸다. 아랫단에 대문과 하인방, 그 윗단에 마당, 창고, 관리사를 두고 맨 윗단에 높은 기단을 쌓아 그 위에 본채를 배치했으며 팔작지붕으로 꾸며 운치 있는 고택을 완성했다. 빛바랜 마루에 앉으니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새 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소나무, 느티나무, 배롱나무, 대나무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한옥의 운치를 더한다. 하지만 창고와 관리사는 지붕이 뻥 뚫려 하늘이 보일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전남 문화재자료 제162호로 지정됐지만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아 폐허처럼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보림사 비자나무숲
보림사 비자나무숲

#보림사 비자나무숲 길에서 평온을 찾다

 

해발 510m의 가지산 깊은 산자락에 앉은 천년고찰 보림사로 발길을 옮긴다. 사찰 인근 비자림 숲은 400년생 비자나무 600여그루가 울창한 군락을 이뤘다. 오솔길로 들어서자 낮에도 햇빛 한올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숲이라 한여름인데도 아주 시원하다. 고요하고 아늑한 숲길을 아주 느리게 걷는다. 초록으로 눈을 씻고 쏟아지는 다양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피톤치드를 폐속 깊숙하게 불어넣으니 머리가 맑아지고 지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목재 질이 좋아 바둑판이나 가구로 쓰이는 비자나무의 열매로 만든 기름은 기침을 멎게 하고 배변에도 좋다고 한다. 숲을 걷다 보면 야생차밭인 ‘청태전 티로드’도 만난다. 청태전(靑苔錢)은 가운데 구멍을 뚫은 모양이 엽전을 닮은 전통 발효차로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12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보림사 대웅보전
 보림사 석탑

가지산 보림사는 860년(헌안왕 4)에 창건된 통일신라시대 고찰로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린다. 현판이 걸린 일주문과 사천문을 지나면 삼층석탑과 석등을 중심으로 웅장한 사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조선사 체징이 헌안왕의 뜻에 따라 신라 구산선문 중 최초로 가지산파를 열었는데 880년 체징이 입적할 때에 이곳에 기거하던 제자들이 800여명에 달했다니 한때 번성했던 모습이 그려진다. 대웅보전에 앞에도 커다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운치 있게 서 있다. 자홍색 꽃은 푸른 하늘에 대비돼 더욱 농염한 모습이다. 가지산 자락에 부딪히며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는 뜻밖의 선물. 은은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며 마음에도 고요한 평화를 선사한다. 대웅보전 앞 약수는 꼭 맛봐야 한다. 비자림과 야생차밭의 자양분이 스며들어 미네랄이 풍부하며 수량이 일정해 한국자연환경보전협회가 ‘한국의 명수’로 선정했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몸과 맘 치유하는 편백나무숲속 힐링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로 들어서자 시원한 분수를 내뿜는 아기자기한 예쁜 정원이 여행자를 맞는다. 숲 입구부터 편백나무향이 강렬해 머리가 시원해진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하고 깊은 숲이지만 모기 한 마리 없다. 병충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향균성분인 피톤치드 덕분이다. 보통 침엽수는 활엽수보다 두 배 이상의 피톤치드를 발산하는데 편백나무는 다른 침엽수종인 잣나무나 소나무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의 피톤치드를 내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름 이른 아침이 가장 왕성하게 나오니 요즘이 피톤치드로 샤워하기 좋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시원하게 문이 모두 열리는 한옥에서는 강사의 안내에 따라 여행자들이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심신을 치유하는 힐링프로그램을 즐긴다. 통나무주택, 황토주택, 한옥 등 숲속에서 건강체험을 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마련돼 건강한 여름휴가를 보내기 좋다. 생태건축을 체험할 수 있는 목재문화체험관, 노폐물을 시원하게 빼주는 편백 소금 찜질방, 숲 치유의 장, 산야초단지 등이 조성돼 있다.

 

편백숲은 걷는 것만으로 힐링이다. 억불산 정상까지 무장애 데크로드인 말레길이 이어져 노약자나 장애우도 편안하게 숲길을 즐길 수 있다. 사색의 숲에서 나무침대에 눕는다. 푸른 하늘을 보며 살랑살랑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즐기다 보니 스르르 편안한 잠에 빠져든다. 톱밥산책로도 강추. 자연의 질감을 맨발로 느끼며 걷을 수 있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며느리바위 포토존 정남진전망대

억불산 트레이드마크인 엄지바위(며느리바위) 포토존도 빼놓을 수 없다. 흔들거리는 그네에 앉으면 뒤쪽으로 엄지바위가 선명하다. 애틋한 사연이 전해진다. 마을의 구두쇠 영감이 시주에 나선 도승을 박절하게 대했고 며느리가 용서를 빌자 도승은 물난리를 예고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보지 말고 앞산으로 피신하라고 알려줬다. 도승이 예언한 날 실제 물난리가 났다. 며느리는 산을 오르다 시아버지가 자기만 놓고 혼자 간다며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에 그만 뒤를 돌아봤다가 그대로 돌로 변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정남진전망대는 장흥의 아름다운 바다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득량도, 소록도, 연홍도, 거금도 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장흥=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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