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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단맛은 감각을 넘어선 지각 [박영순의 커피언어]

입력 : 2021-08-14 18:00:00 수정 : 2021-08-14 14: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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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열매의 당도를 측정하는 모습. 열매의 단맛은 로스팅 과정 중에 거의 사라지지만 완성된 커피의 향미를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좋은 커피에서는 단맛과 신맛이 어우러진 새콤달콤(Sweet and sour)이 느껴진다. 날카로운 자극으로 치달을 수 있는 신맛이 단맛을 만나 부드러워진 덕분이라고 풀이된다. ‘쓴맛의 대명사’로 알려진 커피에서 우리는 정말 단맛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인간은 한 잔의 커피에서 단맛을 감각(sensation)할 수 없다. UC Davis 커피센터가 2017년 실시한 성분 분석 및 관능 평가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연구팀은 콜롬비아 후일라 지역 커피를 드립 브루(drip brew)할 정도로 볶아 섭씨 91.5도의 물로 4분간 우려냈다. 전문 커피테이스터로 구성된 시음단이 여기에서 쓴맛, 신맛, 떫은맛, 그을린 맛, 단맛, 과일향, 캐러멜향, 초콜릿향 등 23개의 속성을 찾아냈다. 추출 시간에 따른 시음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쓴맛과 신맛은 감소하는 반면 꽃향-꿀향 등 감미로운 향과 단맛이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뜻밖의 결과는 성분 분석에서 나왔다.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단맛이 난다고 기록했던 커피 샘플 가운데 단 한 개도 단맛을 유발하는 성분들이 역치 이상 들어 있는 게 없었다. 수크로오스(sucrose)를 비롯해 단맛의 원인물질인 당류가 들어있기는 했지만, 인간의 미각이 달다고 감지할 만큼 농도가 충분하지 않았다. 로스팅 과정에서 당류가 분해되기 때문에 추출을 거쳐 한 잔에 담길 때 커피에서는 단맛을 감각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하게 좋은 커피에서 솜사탕, 딸기잼, 익힌 파인애플, 밀크 초콜릿, 크림, 설탕을 입힌 헤이즐넛, 토종꿀, 메이플 시럽과 같은 단맛을 느낀다. 지각(perception)하는 능력 덕분이다. 커피에서 캐러멜향이 감지될 때 어린 시절 운동회 때 입가에 찐득하게 묻혔던 솜사탕이 떠오르기도 한다. 화사한 장미향 또는 농익은 살구향을 통해서도 단맛이 주는 포근함과 달짝지근함이 희미하게나마 느껴진다. 이렇게 포착되는 향들에 대한 개별적인 기억과 추억을 토대로 한 잔의 커피에 ‘달다’고 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지각이다. 결국 커피를 즐긴다는 것은 감각하는 게 아니라 지각하는 것이다.

감각을 믿을 수 없다고 해서 커피를 감상하는 데 건너뛸 순 없는 노릇이다. 다만 감각에 멈춰선 안 된다. 항간에 커피의 향미를 가르친다는 구실로 거액을 받고 ‘개코 인간’을 훈련하는 과정들이 속속 개설되고 있다. 고가의 아로마 키트를 구매케 해서 일일이 냄새를 맡으며 향을 암기시키는 것으로 향미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상술을 부린다. 향마다 자신의 추억을 입히는 것이 필요하다.

커피 분야에서는 콜롬비아 커피 생산자들이 1997년 프랑스 와인 전문가에게 위탁해 만든 36개의 아로마 키트로도 충분히 향미를 공부할 수 있다. 향에 접근하는 태도를 익히면 일상에서 먹고 마시는 모든 향미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연습을 거듭하는 것으로 족하다.

향만으로 있지도 않은 단맛을 느낀다는 것은 ‘착각(illusion)’이다. 이것은 감각되지 않은 것을 자극받은 것처럼 느끼는 환각(hallucination)과는 다른 차원이다. 커피의 단맛에는 “착각이 때론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만든다”는 역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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