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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위로 인한 업무상 배임죄 성립 요건은? [알아야 보이는 법(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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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09 13:00:00 수정 : 2023-12-10 19: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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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환지 방식에 의한 도시개발 사업을 추진하던 B조합을 위하여 계획 수립 등 사업의 진행에 필요한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 실시계획 변경이 인가되어 B조합의 사업구역 중 일부 환지 예정지의 대로(大路) 진입이 용이해져 위 예정지의 가치가 수십억원 상승했습니다. 그런데도 A는 환지 예정지에 대한 재감정, 환지계획 변경, 변경 지정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B조합은 2016년에야 환지계획 변경인가 신청 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한편 2011년 당시 환지계획에 따르면 A의 친·인척과 지인 등이 위 환지 예정지를 환지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재감정 및 환지계획 변경이 필요한 사정을 알면서도 방치한 A에게 업무상 배임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건은 실제로 업무상 배임죄의 미수로 기소되었던 사건인데, 제1심은 무죄, 항소심은 유죄, 대법원은 무죄로 각각 판단하였습니다.

 

항소심은 “A에게는 환지 예정지에 대한 평가 요인의 변경에 따른 가치 상승액을 적절하게 평가하여 B조합으로 하여금 적절한 청산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이행하거나 후임자에게 관련 사항을 인계하지 않은 채 B조합의 업무를 대행하던 C회사에서 퇴사함으로써, B조합이 재평가의 필요성을 수년간 인지하지 못하여 청산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못할 위험이 발생하였다”며 “A의 이러한 부작위는 사업 요지에 집중적으로 환지를 받은 본인과 친인척, 지인에게 경제적 이익이 되고, B조합에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루어진 것이므로, A가 업무상 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인정함이 옳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에 대하여 “업무상 배임죄는 타인과의 신뢰관계에서 일정한 임무에 따라 사무를 처리할 법적 의무가 있는 자가 그 상황에서 당연히 할 것이 법적으로 요구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부작위에 의해서도 성립할 수 있다”며 “그러한 부작위를 실행의 착수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작위 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사무 처리의 임무를 부여한 사람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으리라고 객관적으로 예견되는 등으로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이어 “그리고 행위자는 부작위 당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위반한다는 점과 그 부작위로 손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였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2011년 실시계획의 인가에 따라 환지 예정지의 가치를 재평가할 필요가 생겼다는 것은 A만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고, 당시 환지계획의 변경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조만간 환지처분이 이루어져 조합원들 사이의 권리관계가 확정될 급박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환지 예정지 권리 이전이나 청산금 확정 등은 환지처분이 있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실시계획 인가 후 ‘즉시’ 환지계획의 변경을 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곧바로 B조합의 재산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초래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따라서 A에게 2011년 실시계획의 인가에 다른 후속 조치를 할 작위 의무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B조합이 환지 예정지의 가치 상승을 청산절차에 반영하지 못할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에서 A가 그러한 작위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A가 부작위로써 업무상 배임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2021. 5. 27. 선고 2020도15529 판결).

 

형법상 부작위범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법익 침해의 결과 발생을 방지할 법적인 작위 의무를 지고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결과 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고 이를 방관한 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때 그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법익 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그 범죄의 실행 행위로 평가될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작위를 작위에 의한 실행 행위와 동일하게 평가하여 부작위범으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작위 의무는 법적인 의무이어야 하므로 단순한 도덕상 또는 종교상 의무는 포함되지 않으나, 작위 의무가 법적인 의무인 한 성문법이건 불문법이건 상관이 없고 또 공법이건 사법이건 불문하므로 법령과 법률 행위, 선행 행위로 인한 것은 물론이고 기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사회상규 혹은 조리상 작위 의무가 기대되더라도 법적인 작위 의무는 있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부작위에 의한 실행 행위를 인정한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고인은 조카인 피해자(10세)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저수지로 데리고 가서 미끄러지기 쉬운 제방 쪽으로 유인하여 함께 걷다가 피해자가 물에 빠지자 구호하지 아니하여 익사하게 했습니다. 위 사례에서 대법원은 “숙부로서 나이 어린 피해자를 익사의 위험이 있는 저수지로 데리고 갔던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가 물에 빠져 익사할 위험을 방지하고 피해자가 물에 빠지는 경우 그를 구호하여 주어야 할 법적인 작위 의무가 있다”고 전제하고, “피해자가 물에 빠진 후에 피고인이 살해의 범의를 가지고 그를 구호하지 아니한 채 그가 익사하는 것을 용인하고 방관한 행위(부작위)는 피고인이 그를 직접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형법상 평가될 만한 살인의 실행 행위라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1992. 2. 11. 선고 91도2951 판결). 

 

즉 피해자가 물에 빠져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에서 그를 구호하지 않은 부작위는 실행의 착수에 이르렀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대법원은 부작위를 실행의 착수로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작위 의무가 이행되지 않으면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에서 부작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업무상 배임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비추어 대법원의 입장이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부작위를 작위와 동일하게 평가하여 처벌하기 위해서는 ‘구성요건적 결과 발생의 위험이 구체화한 상황’이라는 요소를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김미연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miyeon.kim@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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