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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떠나 그린 숲과 공원… 평온과 위로를 주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입력 : 2021-07-31 16:00:00 수정 : 2021-07-31 11: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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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당신 가까이 있는 아르카디아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탓에
물감대신 목탄 작업했던 빈우혁
작품은 섬세하고 완성도 있었지만
당시 우울한 감정 그대로 드러나
현실 도피 위해 독일로 옮겨 작업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며
순수 회화를 지향점으로 삼아 매진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변하는 연못
코로나로 산책 못하자 기억 더듬어
자유롭게 재해석해 연작 선보여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독일의 숲을 그린 작품. 가로 약 6m에 이르는 작품은 실제 숲을 마주한 느낌을 준다. ‘Postfenn 61’. 갤러리바톤 제공

#빈우혁, 그림을 그림으로 그리는 작가

빈우혁(1981~)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전문사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과 석사를 수료했다. 경기도미술관과 OCI미술관, 갤러리바톤, KSD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성곡미술관, 아마도예술공간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아티스트, 퍼블릭아트 뉴히어로, 한국은행 신진작가 등에 선정되거나 상을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 메릴랜드 MICA, OCI미술관, 삼양사옥 등 국내외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0년대부터 독일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한 그는 최근 베를린조형예술가협회(BBK Berlin-Professional Association of Visual Artists Berlin)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속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가는 숲과 공원을 그린 회화로 널리 알려져 있다. 때로는 나무가 빽빽하거나 때로는 연못이 자리 잡은 색이 있는 작품이다.

그는 작업 초기에는 색이 등장하지 않는 흑백의 화면을 그렸다. 드로잉에 주로 사용하는 목탄으로 작업 전체를 완성해냈다. 두 가지 색만이 존재해 단조로울 법도 하지만 화면은 보는 이의 시선을 오래 잡았다. 선과 점 그리고 그것들의 번짐이 이루어 낸 성공적 묘사 덕분이었다. 더불어, 거기서는 작가 특유의 서정성이 풍겼다.

그가 목탄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유는 사실 미술적인 것과 거리가 멀었다.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으로 재료비가 부족했고 물감보다 저렴한 목탄을 선택했다. 목탄으로 그림을 그릴 종이도 동료들이 버린 것을 주워 사용했다. 섬세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지만 이런 연유에서 비롯했을 우울감이 떠나지 않았다. 이때의 작품은 ‘우울한 날’(2013)과 같이 제목에서 작가의 당시 감정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던 어느 날 빈우혁은 왜 이런 작업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을 던지게 됐다. 개인적 힘든 일을 작업에 반영하는 것이 자기에게, 그리고 보는 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했다. 눈앞에 마주한 현실을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이 공감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사회적인 문제를 전하고자 하는 시도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이 모든 힘듦과 문제의 원인들이 없는 장소를 그리겠다고 마음먹었다. 멀리 떨어진 독일로 무작정 떠나 숲과 공원 등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이때의 변화를 작가 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인이 돼서 숲과 비슷한 곳에조차 가까이할 수 없게 된 현실에서 도피해 결국 독일에 있는 숲에 이르러서야 위로를 연장할 수 있게 해줬다. 슬플수록 더 기쁘게 웃으며, 괴로울수록 고요하게 자신을 위로하고 감정을 숨길 수 있도록 그리는 행위와 소요(逍遙)의 과정을 받아들이고,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이야기가 없는 듯한 풍경을 통해서 침묵의 이유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숲과 공원 등을 그리기 시작한 작가는 철저하게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에 집중했다. 독일에서 생활하며 자주 찾는 주변 장소를 촬영한 사진을 참고해 그리는 식이었다. 제목에서 감정을 배제하기 시작했고 작품에서 은유나 상징도 지워버렸다. ‘우울한 날’ 등의 제목은 이제 ‘슈프레파 31크(Spreepark 31)’, ‘슈프레파크 32(Spreepark 32)’, ‘슈프레 29(Spree 29)’와 같이 지명과 번호 부여로 변했다. 오로지 그리는 대상과 행위 자체에 집중하며 순수 회화를 자기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시도는 보는 이에게 그것을 또한 그대로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수많은 의미와 해석이 넘쳐나는 현대와 동시대 미술에 있어 경험하기 흔치 않은 기회다.

#한여름에서 벗어나 연못을 거닐기

커다란 연못이 있다. 연못은 자기에게 주어진 캔버스라는 영역을 가득 채운다. 채우다 넘쳐 전시장의 벽까지 제 것으로 만들었다. 커다란 범위를 차지한 연못은 화려한 색으로 다시 한번 자기 존재를 확장한다. 연못을 메운 물은 새파랗고 그 위에 떠 있는 식물은 초록이며 꽃은 연보랏빛을 지녔다. 자연의 원색은 보는 이의 눈을 확대해 연못을 더 크고 더 아름다운 존재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렇게 넓게 펼쳐진 연못을 관람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천천히 거닌다. 어느 때보다 길고도 조용한 산책을 즐기며 장면 장면을 살핀다. 바람은 연못에 물결을 만들어 내고 연못 위의 식물은 물결을 따라 움직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 속 부는 바람이 내 볼에도 느껴진다.

‘안식처(Santuary)’는 빈우혁이 최근 선보인 연작으로 8점의 캔버스가 나란히 걸린 총 길이는 15.2m에 다다른다. 작가는 팬데믹 속에 평소 즐기던 숲과 공원으로의 산책이 위험해지는 경험을 했다. 이 상황을 나름의 방식으로 뚫고 나가기 위해 기억 속 자연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먼발치에서 풍경을 바라보며 마음에 들 때까지 자유롭게 재해석, 조합했다. 과거의 경치와 지금의 흥취는 시시각각 변하는 연못이라는 상상 속 새로운 장소를 탄생시켰다.

‘프롬나드’ 전시장 설치 장면. 갤러리바톤 제공

작품은 보는 순간 파리 오랑주리미술관에 영구설치된 모네(Claude Monet)의 ‘수련(Water Lilies)’(1914~1926) 연작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작가는 모네의 작품에 대한 의식과 두려움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고민 끝에 회화적 기법을 통해서 극복해내는 시도를 펼쳤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빛의 움직임에 집중해 여느 인상주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짧은 붓의 흔적을 남기며 그려졌다. 빈우혁은 연못의 순간을 젊은 기운을 담아 호방한 붓질과 색조 사용으로 화면에 포착했다. 붓질이 오가며 만든 넓은 색면으로 평면성을 강조하는 그림을 완성해냈다.

빈우혁의 작품을 두고 누군가는 “도망자의 시선에 걸린 풍경”과 같이 부정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빈우혁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건 누구보다 그가 현실과 치열하게 관계하며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2014년 ‘아르카디아(Arkadia)’라는 개인전을 열어 숲 그림을 선보였다. 아르카디아는 평온과 위로가 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실재하는 지역이다. 결국 그가 여기를 벗어나 향하는 저기는 현실 밖이 아니라 이상적 현실이다. 그리고 그는 이 이상적 현실 속에서 화가로서 작업에 관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같은 숲을 그리더라도 지속적 실험과 변화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름은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거나 떠나기에 좋은 계절이다. 무더위 또는 푸르러진 숲 등 핑곗거리가 다른 계절보다 더 많다. 그렇다면 이제 자기만의 이상적 현실로 떠나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빈우혁의 연못 그림을 바라본 뒤 눈을 감고 상상 속에서 그 연못을 걷는 긴 산책을 해보아도 좋겠다. 지친 당신에게 제목 그대로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작가는 멀리 독일로 떠났지만, 그 덕에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마음을 편히 만드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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