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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은 ‘장진호’를 왜 ‘초신’이라고 불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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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28 06:00:00 수정 : 2021-07-27 18: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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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유엔군 ‘일본어’ 지도 이용
장진(長津)의 일본식 발음 ‘초신’으로 각인
미국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 전투 기념비. 장진(JANGJIN) 뒤에 괄호 하고 초신(CHOSIN)을 병기한 점이 눈에 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산과 계곡, 그리고 논에서 숱한 전투가 있었습니다. 인천에서, 장진호(Chosin Reservoir)에서, 단장의능선(Heartbreak Ridge)에서, 또 부산을 둘러싼 낙동강 방어선에서 목숨을 바친 그분들의 용맹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8주년을 맞아 26일(현지시간) 발표한 포고문 일부다. 1950년 9월 역사적 상륙작전이 펼쳐졌던 인천, 1951년 9∼10월 강원도 양구 일대에서 벌어져 많은 미군 병사의 목숨을 앗아간 단장의능선 전투 외에 장진호를 언급한 점이 눈길을 끈다.

 

바이든 대통령이 쓴 ‘Chosin Reservoir’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초신 저수지다. 함경남도 개마고원 남쪽에 있는 장진호는 원래 호수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그 부근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며 생겨난 거대한 인공호수이기 때문에 호수 대신 저수지(Reservoir)라고 표현한다. 그럼 장진은 왜 실제 발음과 달리 초신(Chosin)으로 표기되는 걸까.

 

장진호는 1950년 11∼12월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 미 해병대와 중공군이 2주일간 사투를 벌인 장진호 전투의 무대다.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두만강을 향해 북진하던 미 해병대는 중공군의 참전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장진호 일대까지 진격했다. 그곳에 매복해 있던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내세워 대대적인 기습을 가하고, 이에 허를 찔린 미 해병대가 반격과 동시에 다급한 퇴각에 나선 것이 장진호 전투의 개요다.

장진호 전투(1950년 11월27일∼12월10일) 당시 미 해병대원들이 영하 30도에 이르는 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전사자들 시신을 트럭에 싣고 있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전시

당시 한국은 군사 작전에 쓸 지도를 만들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미군 등 유엔군은 급한 대로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제작한 한국 지도에 의존했다. 한자 장진(長津)을 일본어로 읽은 발음이 초신이다. 장진호 전투 참전용사들 뇌리에 그 처참했던 싸움터 이름이 초신으로 각인된 이유다.

 

오늘날에도 미 해병대에는 ‘초신 퓨(Chosin Few)’란 말이 남아 있다. 초신(장진호)에서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선택된 소수정예를 일컫는 말이다. 초신의 발음이 ‘선택됐다’는 뜻의 영어 단어 초즌(Chosen)과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장애인법(ADA) 제정 31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신화연합뉴스

미 해병대는 2017년 버지니아주(州)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 경내에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세우며 영어 대문자로 ‘장진(JANGJIN)’을 새긴 뒤 옆에 괄호 하고 ‘초신(CHOSIN)’을 병기했다. 그해 6월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장진과 초신이 나란히 적힌 이 기념비를 찾아 참배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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