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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정화운동 앞장선 종단 개혁의 상징 [고인을 기리며]

입력 : 2021-07-22 19:42:10 수정 : 2021-07-22 21: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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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前 총무원장 월주스님 열반
80년대 군부정권 지지 거부 이후
‘나눔의 집’ 등 공익 활동 이어와
“세상만물이 부처”… 임종게 남겨
26일 김제 금산사서 영결·다비식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 스님이 22일 열반했다. 법랍 68년, 세수 87세.

대한불교조계종은 제17대와 28대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 스님이 22일 오전 9시 45분쯤 전북도 김제 금산사에서 원적했다고 밝혔다. 월주 스님은 올해 폐렴 등 노환으로 병원에서 치료받았다가 이날 오전 금산사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월주 스님은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삶과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으로 남긴 ‘임종게(臨終偈)’를 통해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공(空)’과 만물이 부처임을 강조했다.

“하늘과 땅이 본래 크게 비어있으니 일체가 또한 부처이구나. 오직 내가 살아왔던 모든 생애가 바로 임종게가 아닌가. 할!”(天地本太空 一切亦如來 唯我全生涯 卽是臨終偈 喝!·천지본태공 일체역여래 유아전생애 즉시임종게 할)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월주 스님은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56년 화엄사에서 금오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1966년 제2대 중앙종회의원으로 선출된 후, 조계종 총무원 교무부장, 총무부장, 중앙종회 의장 등 종단의 공직을 맡았다. 1961년부터 10여년간 금산사 주지를 맡아 불교 정화 운동에 앞장섰다.

30대 때 조계종 개운사 주지, 총무원 교무·총무부장, 중앙종회의장 등을 맡아 활동했다. 1980년 4월 대한불교조계종 제17대 총무원장으로 추대된 고인은 당시 12·12사태와 5·17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정권의 지지 성명 요구를 거부했고, 5·18민주화운동이 전개되는 광주를 방문해 부상한 시민을 위로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봉행했다.

1994년 제28대 총무원장에 취임한 이후 우리민족서로돕기 상임공동대표겸 이사장(1996),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의장 겸 이사장(1996), 대통령 국토통일 고문회의 고문(1998), 실업극복국민공동위원회 위원장(1998), 사회복지법인 '나눔의 집' 이사장(1998)으로 활동했다.

고인은 이같은 헌신적인 사회활동으로 국민훈장 모란장(2000), 국민훈장 무궁화장(2011), 캄보디아 국왕 훈장(2010), 미얀마 최고 작위 ‘사따마 조디까다자’(2013)를 수훈했고, 조계종포교대상(2005), 만해대상(2012), 제1회 민세상(2010), 대원상(2013)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보살사상(화갑론 문집), 보살정론, 인도성지순례기, 보살사상경구선집(편저), 도심집 등이 있다.

장례는 종단장으로 엄수되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에 거행될 예정이다. 빈소는 금산사, 서울 조계사, 영화사에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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