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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가 자녀 취업 청탁해도 처벌 못 해… “별도 입법 필요” [LG 취업청탁 리스트 입수]

입력 : 2021-07-21 06:00:00 수정 : 2021-07-21 07: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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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비리 근절 못 하는 현행제도

‘뇌물 아닌 뇌물’ 작동 가능성 큰데
현재는 고작 업무방해죄 처벌 그쳐

공모 가담한 면접위원도 처벌 못해
억울한 탈락자는 피해자 아닌 제3자

국회 관련법 발의했지만 잇단 무산
특별법 발의 류호정 “입법마련 시급”

기업들 수시채용 전환… 꼼수 쉬워져
업계선 “정기공채 폐지는 수사와 무관”
사진=연합뉴스

LG전자가 유력인사들의 청탁을 받아 신입사원을 채용했지만 현재 우리 형법 체계상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은 ‘업무방해죄’가 유일하다. 이마저도 몇 가지 편법을 동원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법률가들은 지적한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청탁을 받고 특정인을 채용하는 경우를 처벌할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역대 최저 취업률 기록을 갈아치우는 요즘, 채용부정 소식만큼 청년들을 분노케 하는 불공정 사례도 없다.

 

◆뇌물 성격인데 처벌 불가

 

공무원이 1억원을 수수했다면 실형을 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자녀가 청탁의 대가로 취직한다면 우리 법에서는 죄가 아니다. 공무원도 그 자녀도 마찬가지다. 30년간 근무한다고 보면 수수액도 비교할 수 없이 큰 고액이다. 이를 납득할 수 있을까. 그래서 청탁채용이 사회 유력자들에게는 더 나은 측면이 있다. ‘뇌물 아닌 뇌물’로 채용비리가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를 뇌물죄로 처벌할 방법이 마땅찮아 수사기관에선 일단 ‘인사담당자가 위계 등을 부려 회사 대표나 면접위원의 업무를 방해한 사건’으로 규정,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처벌한다. 이렇게 접근하면 ‘업무를 방해당한’ 법률상 피해자는 대표나 면접위원이 된다. 다만 해당 대표나 면접위원이 공모했다면 이들을 처벌할 방법도 없다. 인사담당자에 속아 ‘업무를 방해당한 사실’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채용 부정으로 억울하게 탈락한 응시자가 진짜 피해자이건만, 이들은 업무방해죄의 구조상 사건과 관련이 없는 참고인 신분이다. 즉 피해를 구제할 법적 근거가 사라지고 이들에 대한 구제 노력도 없다.

 

이 때문에 새로운 접근법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많다. 법무법인 서평의 안대희 변호사는 “채용비리는 채용과정에서 응시자의 노력과 능력이 아닌 사회적 지위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차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도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서 구직자의 출신과 용모, 직계존비속 및 가족의 학력, 직업, 재산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면서 “다만 이 규정에 더해 특정인을 채용하거나 채용하지 않는 행위에 대한 별도 금지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벌법 매번 발의됐지만 폐기

 

부정 채용 처벌법을 만들기 위한 국회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18년 5월 직업능력과 무관한 기준으로 채용심사하면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조항과 부정청탁자 채용 취소 조항을 담은 채용절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병두 전 의원은 2019년 1월 공직자가 민간기업에 부정청탁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부정청탁금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회기내 입법되지 않은 채 모두 폐기됐다.

 

최근에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1월 채용비리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부정 채용을 청탁한 사람과 청탁을 받아들여 실행한 사람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법안이다. 가장 진일보한 법안으로 평가된다. 채용비리 행위를 하거나 요구, 약속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8000만원 벌금에 처해진다. 이 법안에는 채용비리로 유죄가 확정된 사람 명단을 1년간 공개하고, 피해자들은 다음 단계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구제책도 담겼다.

류 의원은 “채용비리는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는 반사회적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처벌받아야 한다”며 “그간 채용비리 행위를 단죄할 법이 없었기 때문에 채용비리 처벌 특별법을 발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회 전반에 만연한 채용비리를 근절하지 않는 한 정의로운 사회는 어불성설”이라며 “채용비리의 개념과 적용범위, 처벌 규정, 피해자 구제방안 등이 마련된 입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수시채용 ‘꼼수’로 더 음성화 우려

 

최근 민간 주요기업은 정기공채를 수시채용으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정기공채는 채용 기준에 대한 내규가 있어 부정채용의 근거가 되고, 채용 인원이 정해져 있어 채용비리로 인한 탈락자를 가려낼 수 있다. 반면 수시채용은 때마다 기준과 채용 규모도 달라 채용비리의 실체를 규명하기 쉽지 않다. 청탁 대상자를 위해 해당 수시채용의 기준과 규모를 조정한다면 업무방해죄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전형’이라는 자조섞인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LG그룹 역시 경찰의 강제수사가 시작된 직후인 2020년 상반기부터 정기공채를 폐지했다. 과거 정기공채에는 학점이나 영어능력시험 점수 등 자격요건이 분명했지만, 수시채용에서는 이 같은 기준이 사라지거나 모호해졌다. 하지만 업계는 “공채를 폐지하고 상시채용을 도입하는 것은 채용비리와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상시채용 방식으로의 전환은 대기업 채용의 트렌드와 코로나19 이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우수 인재를 먼저 확보하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현준, 조현일,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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