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서 자유페루당후보 출마 돌풍
빈부격차 때문 유권자들 ‘좌클릭’
후지모리 ‘부녀대통령’ 꿈 또 무산

페루 대선을 둘러싼 ‘사기·불복’ 논란이 6주 만에 종지부를 찍고 시골 초등교사 출신 좌파 후보 페드로 카스티요(51)의 당선이 확정됐다.
페루 국가선거심판원(JNE)은 19일(현지시간) 카스티요를 대통령 당선인으로 공식 발표했다.
카스티요는 지난달 6일 치러진 결선투표에서 50.125%를 득표해 49.875%를 얻은 우파 후보 게이코 후지모리(46)에 4만4000여 표차로 앞섰지만, 후지모리 측이 대선 사기 의혹을 제기함에 따라 결과 발표가 43일간 미뤄져 왔다. JNE는 이의 검토 결과 개표가 조작됐다는 후지모리 측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후지모리 후보의 ‘부녀 대통령’ 꿈은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1990∼2000년 집권한 일본계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인 그는 2011년, 2016년에 이어 세 번째 대권에 도전했으나, 부패 등 혐의로 복역 중인 독재자의 후예라는 반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후지모리 후보는 이날 선거 결과 발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을 존중해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카스티요 측이 수천 표를 도둑질했다는 기존 주장은 이어갔다.
외신들은 카스티요 당선 소식을 “(페루의) 첫 농민 대통령”(AP통신), “좌파 아웃사이더의 승리”(뉴욕타임스)라고 표현했다. 1969년 페루 북부 카하마르카의 시골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교육학을 전공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쳤다.

중앙 정치무대에서 무명이나 다름없던 그는 지난해 마르크스주의 정당 자유페루당 후보로 깜짝 출마해 돌풍을 일으켰다. 여론조사 지지율 2%에서 출발해 20명 이상의 후보가 난립한 1차 투표에서 1위(18.9%)를 기록한 것이다.
전통 농부 모자를 쓴 채 전국을 누빈 그는 “부유한 나라에서 더는 가난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며 정치·경제 체제 개혁과 양질의 교육 기회 확대 등을 약속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인구 약 10%가 빈곤에 빠질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각해지면서 페루 유권자들이 좌클릭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독립 200주년인 다음달 28일 취임하는 카스티요는 앞서 “이제 희망으로 가득 찬 200년의 문을 열자”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선거 압승을 토대로 중남미 좌파 물결을 일으켰던 다른 나라 전·현직 좌파 대통령과 달리 근소한 격차로 당선된 그는 정치적 경험이나 대중성, 의회·군대 등의 지지가 부재해 개혁 동력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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