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 위해 고유 업무 등한시
행정공백 피해는 유권자 몫
지역 발전에도 걸림돌 작용
내년 대선을 앞두고 광역단체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에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롯해 최문순 강원지사, 양승조 충남지사가 현직 신분을 유지한 채 참여했다. 예비경선 벽을 넘지 못한 최 지사와 양 지사는 도지사로 복귀했다. 원희룡 제주지사 또한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뛰어들기 위해 지사직 사퇴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명의 현직 단체장은 예비경선 기간 전국을 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들은 행정공백을 줄이기 위해 주말을 이용하거나 휴가를 내고 일정을 소화했다고 밝혔지만 해당 자치단체에서는 “단체장 본연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렸다”는 뒷말이 나왔다. 예비경선을 통과한 이 지사는 민주당 대선후보가 최종 결정되는 10월 중순까지 ‘도지사’와 ‘대선주자’라는 1인2역을 감당해야 해 행정공백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지사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로 새 지사가 선출될 때까지 단체장 공석이 계속된다. 행정 순항을 기대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인다. 도지사 부재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 몫으로 남는다. 오죽했으면 이달 초 국민의힘 소속 경기도의원들이 이 지사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로 도정공백이 우려된다며 지사직 사퇴를 촉구했을까.

광역단체장의 대권도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단체장들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자리를 헌신짝처럼 버려 국민들을 실망시켰다. 2003년 12월 김혁규 경남지사가 사퇴했으며, 2012년 7월에는 김두관 경남지사가 중도 사퇴했다. 2014년 6월에는 김문수 경기지사가 대선 출마를 위해 지사직을 버렸다. 사퇴 2년 전인 2012년 12월에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현직 신분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7년 4월에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정치적 야망을 위해 현직 단체장직에서 중도 사퇴했으며, 이낙연 전남지사는 2017년 국무총리직을 위해 13개월 남은 지사직을 그만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 또한 현직을 유지하면서 대선 경선에 발을 담갔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성남시장 신분으로 대선 경선에 참여하기도 했다.
단체장직을 유지하면서 대권 도전에 나설 경우 당사자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다. 경선기간 동안 유권자를 만나고 언론을 통해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발돋움할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경선을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단체장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다. 앞으로도 단체장의 대권 도전은 정치적으로 체급을 키울 수 있어 줄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주의 꽃이라는 지방자치를 도입한 목적에서 볼 때 현직 단체장의 대권 도전과 중도사퇴는 본말이 전도됐다고 할 수 있다. 주민들이 단체장으로 선출한 것은 지역의 특성을 감안한 정책을 펴 지역을 발전시키고 삶을 향상시켜 달라는 것이지 고유 업무를 등한시하며 정치적 야망을 이루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는 비상시국에서는 자칫 단체장직을 소홀히 했다가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최근 강원 강릉시장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거리두기를 4단계로 격상하는 등 확산세를 잡기 위해 초강수를 둔 것은 민선시장이었기에 가능했다. 우물쭈물하다가 시기를 놓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지방자치를 하는 것이다.
단체장의 대권 도전이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현직 단체장이라는 프리미엄을 이용해 신분 상승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임기 동안 실시한 정책 성적표를 갖고 평가를 받은 다음 체급을 높여 도전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다. 2018년 지방선거 때 서울 일부 구청장은 21대 총선 출마를 위해 불출마했다. 단체장 중도사퇴를 막기 위한 용단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단체장의 중도사퇴나 책무를 뒷전으로 두고 대권 등에 도전하는 것은 지방자치 발전의 걸림돌이다. 올해는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내년 지방선거 때 유권자들은 지방자치 의미를 망각한 채 한눈을 파는 후보를 선별해 내야 한다. 그래야 지역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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