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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의맛깊은인생] 아빠들, 삼계탕 먹고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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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20 23:23:30 수정 : 2021-07-20 23: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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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드는가보다. 서운한 일이 부쩍 많다. 옛날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조그맣고 사소한 일에도, 스치듯 지나가는,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도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베인다.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고 오래오래 쓰리다. 아 이렇게 나이가 드는구나. 하루하루 실감한다.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그나마 그들을 만날 기회도 많이 없다. 어느새 방 안에서 맥주 한 잔을 따라 놓고 단톡방에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느 친구는 회사에 얼마나 더 붙어있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어느 친구는 며칠 전 고3 아들에게 생애 처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다들 ‘자주 좀 보내라’고 말했지만, 다들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가족과 서먹하게 지낸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군에 간 아들은 엄마에게만 전화를 해 군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양이다. 아빠에게는 안부 카톡 한 통 없다. 그런 아들이 서운하다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는 그게 뭐 서운해할 일이냐고 타박이다. 아내에게 당신은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아 심정을 이해 못 한다고 말하고 말았다. 말이 길어지면 싸움이 된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이렇게 말하는 아내가 아이들보다 더 밉다.

삼겹살집에 가면 아이들 먹을 고기를 굽느라 정신이 없다. 한창 먹성이 좋을 때라 고기를 굽는 불판이 빌 틈이 없다. 고기가 구워지는 속도가 아이들이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이들이 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면 그제서야 소주 한 잔 마시고 고기 한 점 겨우 입에 넣는다. 치킨을 시키면 다리는 당연히 아이들 몫이다. 아이들과 아내는 아빠가 다리를 원래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있다. 아빠가 퍽퍽한 닭가슴살만 먹고 치킨무만 먹는 이유가 그 부위를 유독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건 닭다리다. 20년째 닭다리는 두 개나 먹었을까. 생선 꼬리 부분과 꽁치 구이의 쓴 뱃살 부분만 먹는 건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부분을 아무도 안 먹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그냥 좋아하는 척하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어제 마트에서 산 냉동 삼계탕을 끓였다. 혼자 식탁에 앉아 삼계탕을 먹었다. 혼자 다 먹기에는 양이 좀 많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다. 먹다가 이게 무슨 신파이고 청승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 먹었다. 살아보니 사는 게 삶의 반은 신파라는 걸 알게 됐다. 삼계탕 그릇을 비우고 혈압약과 비타민을 먹고 집을 나왔다. 세상사 서운해도 일은 해야 하니까. 날이 많이 더웠다. 요즘 들어 유독 서운한 일이 많은 것은 푹푹 찌는 여름 날씨 탓이라고 생각했다.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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