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드는가보다. 서운한 일이 부쩍 많다. 옛날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을 조그맣고 사소한 일에도, 스치듯 지나가는, 툭 던지는 말 한마디에도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베인다.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고 오래오래 쓰리다. 아 이렇게 나이가 드는구나. 하루하루 실감한다.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그나마 그들을 만날 기회도 많이 없다. 어느새 방 안에서 맥주 한 잔을 따라 놓고 단톡방에서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느 친구는 회사에 얼마나 더 붙어있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어느 친구는 며칠 전 고3 아들에게 생애 처음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다. 다들 ‘자주 좀 보내라’고 말했지만, 다들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가족과 서먹하게 지낸다.
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군에 간 아들은 엄마에게만 전화를 해 군생활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양이다. 아빠에게는 안부 카톡 한 통 없다. 그런 아들이 서운하다고 아내에게 말하니 아내는 그게 뭐 서운해할 일이냐고 타박이다. 아내에게 당신은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아 심정을 이해 못 한다고 말하고 말았다. 말이 길어지면 싸움이 된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이렇게 말하는 아내가 아이들보다 더 밉다.
삼겹살집에 가면 아이들 먹을 고기를 굽느라 정신이 없다. 한창 먹성이 좋을 때라 고기를 굽는 불판이 빌 틈이 없다. 고기가 구워지는 속도가 아이들이 먹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이들이 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면 그제서야 소주 한 잔 마시고 고기 한 점 겨우 입에 넣는다. 치킨을 시키면 다리는 당연히 아이들 몫이다. 아이들과 아내는 아빠가 다리를 원래 좋아하지 않는 줄 알고 있다. 아빠가 퍽퍽한 닭가슴살만 먹고 치킨무만 먹는 이유가 그 부위를 유독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건 닭다리다. 20년째 닭다리는 두 개나 먹었을까. 생선 꼬리 부분과 꽁치 구이의 쓴 뱃살 부분만 먹는 건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 부분을 아무도 안 먹기 때문에 먹는 것이다. 그냥 좋아하는 척하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어제 마트에서 산 냉동 삼계탕을 끓였다. 혼자 식탁에 앉아 삼계탕을 먹었다. 혼자 다 먹기에는 양이 좀 많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먹었다. 먹다가 이게 무슨 신파이고 청승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 먹었다. 살아보니 사는 게 삶의 반은 신파라는 걸 알게 됐다. 삼계탕 그릇을 비우고 혈압약과 비타민을 먹고 집을 나왔다. 세상사 서운해도 일은 해야 하니까. 날이 많이 더웠다. 요즘 들어 유독 서운한 일이 많은 것은 푹푹 찌는 여름 날씨 탓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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