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 11월 4일 보안사(기무사의 전신)의 불법사찰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보안사 복무 중 프락치로 수사에 협조하다 양심의 가책 끝에 탈영한 윤석양 이병이 민간인 사찰 폭로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상이 불투명하며 권모술수로 정치생활 30년을 한 신뢰성이 전혀 없는 위험인물’로 묘사됐고, 야당 국회의원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인파일에는 자택 내부 도면과 평상시의 동선이 적혀 있었다. 사찰문건에는 김대중·김영삼 등 야당 정치인과 김수환 추기경 등 종교계 인사를 포함한 1303명의 동향이 담겼다.
1972년 6월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사건 특종보도 뒤엔 ‘딥 스로트(Deep Throat)’가 있었다. 이 사건은 야당 선거사무소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던 남성 5명이 현장에서 발각·체포되면서 불거졌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노리던 비밀공작반이었다. 제보자가 준 단서 덕분에 닉슨 정권의 선거방해 공작은 만천하에 공개됐고, 1974년 대통령 퇴진으로 이어졌다. 보도 33년 후인 2005년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딥 스로트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출금’ 사건의 공익신고자가 드러나 화제다. 2019년 6월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안양지청의 ‘김학의 수사’를 무산시킬 때 그 사건의 담당 부장검사였던 장준희 검사다. 당시 안양지청의 윤원일 주임검사는 “수사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다가 교체됐다. 주임검사까지 맡게 된 장 부장검사는 “윗선의 압력을 받은 안양지청장이 사건을 종결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검사 생활 20년 했지만 이렇게 센 압력이 느껴지긴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장 부장검사는 수사 중단 후 15개월이 지나 국가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그는 “출금 당시 피의사실도 없었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법무부가 감금 비슷한 불법출금을 한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남용”이라고 했다. “외압을 막지 못한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며 사과했다. 검사는 공익의 수호자다. 그런 검사마저 외압에 시달리다 공익신고하는 현실은 정상이 아니다. 책임을 묻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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