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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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리 7000원, 값싼 환경·노동의 합작품
생명 경시·온난화… ‘저렴함’ 대가 부메랑으로

연일 폭염이 계속된다. 무더위에 지친 몸을 보양하려고 대형마트에 들러 백숙용 닭 두 마리를 샀다. 처음 손에 든 건 두 마리 한 묶음에 7000원이 안 된다. ‘가성비’ 갑으로, 절로 손이 갔다. 그러다 방목해 길러낸 무항생제 토종닭으로 갈아탔다. 아무래도 이쪽이 마음에 구김을 덜 준다.

제이슨 무어와 라즈 파텔의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저렴한 경제의 위험’을 경고한다. 콜럼버스 이후 500년 지구사를 훑어 내리면서 저자들은 기후위기로 치닫는 현재의 지질단계를 ‘인류세’보다 ‘자본세’로 부르자고 제안한다. 안정된 기후로 인류의 번영을 낳은 홀로세를 망친 원인이 자본의 폭주 탓임을 분명히 하려는 뜻이다. 핵심에 ‘저렴함’이 있다.

자본의 작동원리는 ‘물건을 비용 적고 효율 높게 생산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자명하나 함정이 있다. 생산에 투입되는 요소를 싸게 얻을 수 없다면 전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같은 필수 요소를 싼값에 획득해야 움직인다. 저자들은 저렴한 닭을 예로 들어 이를 설명한다.

우리가 먹는 닭은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이 들어간 사료를 먹고 몇 주 만에 성체까지 자란 후 도축된다. 이것이 ‘저렴한 자연’이다. 생명을 무시하고 지구 자원을 싸게 획득하는 일은 닭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에서 벌어진다. 대량 사육에는 대량의 값싼 노동력도 필요하다. 식민지 노예 노동이나 저개발 지역의 농민이나 이주노동자 같은 ‘저렴한 노동’ 없이 저렴한 닭은 존재할 수 없다.

닭의 대량생산 공정에 맞춰 특정 작업을 반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아프다. 오랜 반복노동은 근골격계 질환을 낳는다. 환경도 좋지 않아서 다치기도 한다. 그런데 돌봄은 회사가 아니라 가족이 떠맡는다. 돈 들지 않는 ‘저렴한 돌봄’ 없이 ‘저렴한 노동’도 없다. 대량생산된 닭들은 대량 공급돼 싸게 팔리거나 값싼 간편식으로 만들어져 공급된다. 저렴한 노동에 돌봄 비용마저 떠안은 노동자들은 이러한 ‘저렴한 식량’을 먹을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공장식 축산업자는 닭고기 대량생산에 필요한 ‘저렴한 에너지’도 공급받으며, 군대나 학교나 정부의 공급 이권을 독점하고 각종 보조금 등 ‘저렴한 돈’까지 챙긴다. 세금으로 이들의 이윤을 보장하는 셈이다. 이 과정을 세세히 살펴보면 싸구려 닭은 동물, 여성, 빈민, 유색인, 이주민에 대한 차별 없이 생산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는 ‘저렴한 생명’의 세상이기도 하다.

두 가지 이유로 저렴한 경제는 절대 유지될 수 없다. 첫째, 생명이 경시되고 인권이 박탈되는 세상에서 살고픈 사람은 없다. 그런 세상은 우리의 자존감과 행복감을 떨어뜨린다. 민주주의가 작동한다면 결국 노예노동은 금지되고 최저임금은 실시되며, 돌봄노동은 값을 치르고, 군대·학교·정부엔 지역의 산물이 공급된다.

둘째, 지구 한계가 가로막는다. 코로나19에서 보듯 인간 작용에 대한 비인간 생명의 반작용이 점차 커지고 있다. 폭염, 호우, 산불, 한파 등 기후위기도 심해지는 중이다. 지구가 버티지 못하면 인류도 끝이다. 저렴함의 대가는 기어이 우리 자신에게 되먹임된다. 저렴함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으면 닥쳐올 재앙을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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