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관계 질척거림·감정 낭비 거부
연애 고민 등 상담전문가 찾아
이직도 몸값 높이는 전략 활용
‘쿨’한 신세대 문화 조금은 생소

20대를 특징짓는 또 하나의 코드, ‘쿨(cool)함’.

지난 봄학기, 대학원 수업시간에 20대 석사과정 학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자신들은 취업 연애 기타 등 고민거리가 생기면 주변의 친구나 친척에게 털어놓기보다 상담전문가를 찾아간다는 것이다. 자신들 사이에서는 상담전문가를 ‘선생님’으로 부른다는데, ‘나 오늘 선생님한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정보를 나눈다는 것이다. ‘선생님께 그런 질문을 해도 되는 거야?’라든가, ‘선생님께 어떤 방식으로 질문하는 것이 좋을까?’류의 이야기가 ‘선생님’을 찾는 동료들 사이에 자주 공유되곤 한다고 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행여라도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내면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경우엔 ‘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고 싶지 않다’며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자신들의 에티켓이란다. 시시콜콜히 자기감정을 털어놓는 친구를 일컬어 ‘기(氣)빨러’(나의 기를 빼앗아가는 사람이란 의미인 듯)라 부른다는데, 너나없이 힘든 각자도생의 시대, 내 앞길 건사하기도 만만치 않거늘, 옆사람 고민까지 들어줄 여력도 여유도 없다는 고백 속에 20대 특유의 ‘쿨함’이 느껴졌다.

친구가 연애를 시작하면 주위 친구들이 함께(?) 연애를 하던 학창시절을 지나온 세대로선, 지금 20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소함이 밀려오고 그들 특유의 행동을 접할 때마다 생경함이 고개를 든다. 우리 세대는 남자친구와 밀당할 때의 짜릿함에 흥미진진해하고 서운함에 가슴 치다 헤어질 때의 아픔에 같이 울어주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요즘 20대는 연애하는 친구가 내밀한 감정의 기복을 고백할라치면 ‘구리다’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대신, 상대방 배경에 대해서는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란다. 소개팅 자리에 나가기 전엔 상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살뜰히 파악하게 마련인데, 단 자신이 지나치게 속물로 보이는 것은 원치 않기에 흡족한 내심은 적당히 감추고 ‘인상관리’에 많은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직장에서도 20대만의 쿨한 정서가 기성세대를 당황케 하는 경우가 빈번한 듯하다.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기성세대 정서라면 ‘보상받는 만큼만 일할 것’이란 전제는 전형적인 신세대 정서인 듯싶다. ‘보상이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신세대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해주어야 할지’ 고민이 깊어간다는 기성세대 목소리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거엔 상사와 의리도 지켜야 하고 동료들에게 눈치도 보이고 해서 이직(移職) 감행이 쉽지 않았건만, 요즘 신세대는 ‘이직을 능력의 증거라 생각한다’고 당당히 주장한다. 물론 취직조차 아득한 신세대가 넘쳐나건만, 취업시장도 빈익빈부익부인지라 인재는 이곳저곳에서 탐을 내기에,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인재일수록 이직 관리도 몸값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하는 것이 실태라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학에서는 관계 자체가 목적인 1차적(원초적)관계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의 의미를 지닌 2차적 관계로 나누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이 구분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미 1차적 관계의 대표라 할 가족 및 친족 집단의 범위가 대폭 축소되고 상호관계의 밀도도 엷어진 상황이고 보니, 신세대로선 1차적 관계 맺기에 서툴기도 하거니와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다. 희생과 헌신, 이타주의와 양보의 가치를 미덕으로 하는 몰입적 관계 시대를 지나, 본인이 원할 때 맺고 원치 않을 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네트워크의 시대로 이행해 가고 있다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통찰이 우리네에게도 적용되는 셈이다.

세대는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라 같고 다름의 차원임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관계의 질척거림이나 감정의 불안정성을 거부하는 쿨한 신세대를 향해 그래도 모름지기 관계란 몰입을 수반해야 한다고 강변한다면 ‘어쩔 수 없는 꼰대’임을 자인하는 꼴이 될 것만 같아 어정쩡한 시선으로 20대를 관찰 중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