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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닮은 400년 은행나무 만나러 대구 도동서원 갑니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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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18 15:00:00 수정 : 2021-07-18 11: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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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런 풍경’ 서원으로 갑니다/성리학 대가 김굉필 추앙 도동서원 조선 건축미학 정점/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서원 지키는 400살 은행나무 ‘늠름’/밤에 더 아름다운 구암서원...곳곳에서 미디어 파사드

도동서원 400년 은행나무

수월루 앞을 지키는 400년 은행나무는 거대하고 신비롭다. 구불구불 휘어지며 자란 가지 하나는 무게를 견디지 못해 바닥까지 주저앉았다 다시 하늘을 향해 힘차게 일어섰다. 마치 갖은 압박과 회유에도 절개를 지키며 뜻을 펼친 고고한 선비의 풍모처럼. 무성한 초록잎 사이로 펼쳐지는 고풍스러운 도동서원의 주인을 만나러 고개 잔뜩 숙이고 좁은문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도동서원 400년 은행나무

#400년 은행나무가 지키는 도동서원

 

서원여행. 젊은이들에게는 좀 고리타분해 보인다. 오래된 건물 밖에 더 볼게 있을까 싶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7개 서원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다 이유가 있다. 가 보면 안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구지서로 도동서원에 도착하자 한눈에도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은행나무가 여행자를 반긴다. 400년 넘게 도동서원을 지키는 은행나무는 ‘김굉필나무’로 둘레 8.8m, 높이 25m. 어른 6명이 팔을 벌려야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하다. 어른 몸통보다 두꺼운 가지가 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커다란 기둥 5개로 받쳐 놓았을 정도. 도동서원은 ‘소학동자(小學童子)’ 한훤당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앙하기 위해 선조 원년(1568)에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소실돼 선조 37년(1604) 외증손자인 한강 정구가 중건하고 광해군 2년(1610)에 도동서원으로 사액됐다. 정구가 중건 기념으로 은행나무를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도동서원 400년 은행나
수월루

도동서원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수월루에 오르면 앵글에 담긴 힘들었던 은행나무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사람만 오를 수 있는 좁은 돌계단을 오르면 높이 1.5m로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갈 수 있는 환주문이 등장한다. 배움의 터인 서원에 들어서기 전에 선비가 지녀야 할 덕목인 겸손한 마음을 다지라는 뜻이 담겼다. 수월루와 환주문 주변이 온통 배롱나무다. 7월 말이면 꽃을 피워 100일 동안 서원을 붉게 물들이니 꽃이 필 때 오면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서원 풍경에 푹 빠지겠다.

환주문
중정당

환주문을 지나면 정면에 강학 공간인 중정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기숙사인 거의재와 거인재가 배치돼 있다. 자세히 보니 중정당 기둥 윗부분에 흰 종이(상지)가 둘러져 있는데 국내 서원 650여곳 가운데 도동서원에만 존재한다.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 조선시대 성리학을 이끈 다섯 명의 대가를 ‘동방오현’ 또는 ‘조선오현’으로 부르는데 그 가운데 가장 웃어른인 김굉필(1454~1504)을 모신 곳이라는 표시다. 그는 영남학파 종조 김종직의 제자이자 사림파 영수 조광조의 스승으로, 이황도 그의 학문을 논하며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고 칭송했을 정도로 대학자다. 도동서원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됐다.

중정당
중정당 마루

김굉필은 함양군수이던 김종직의 수제자로 들어가 조선 성리학의 명맥을 이었고, 연산군 시절인 1498년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으로 발생한 무오사화에 연루되고 만다. 그는 평안도 회천으로 귀양을 떠났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사약을 받았다. 성리학의 기본인 소학에 심취한 김굉필은 유배 당시 많은 후학을 양성했고 대표적인 제자가 조광조다.

중정당 기단

중정당 기단이 아주 멋지다. 4각에서 12각돌을 빈틈없이 촘촘하게 쌓아 올렸는데 전국의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저마다 마음에 드는 돌을 가져다 쌓았다고 한다. 오른쪽 계단에는 올라가는 다람쥐, 왼쪽 계단에는 내려오는 다람쥐를 새겼는데 ‘동입서출’의 엄격한 규칙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기단에 용 4마리도 보인다. 이곳에서 공부한 선비들 모두 과거에 급제하라는 기원이 담겼단다. 도동서원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의 이론에 따라 수월루, 환주문, 중정당, 내삼문, 사당이 차례로 정렬해 있다. 불필요한 장식을 삼가고 간소하게 지은 조선중기 서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국내 서원 중 유일하게 담장까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서원 뒤편으로 소나무 우거진 오솔길을 10여분 걸으면 김굉필 묘소를 만난다.

이노정
한훤당 고택

#밤이 더 아름다운 구암서원

 

도동서원에서 낙동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달성군 구지면 내리길 강변의 수려한 풍경 속에 자리 잡은 이노정을 만난다. 이곳에도 김굉필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가 일두 정여창과 서로 교류하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며 후학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곳으로, 정자 이름 ‘이노(二老)’는 한훤당과 일두를 뜻한다.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두 사람이 유배된 1498년 무렵 지어졌으며 앞면 4칸·옆면 2칸의 아담한 정자로 마루 천장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통풍구를 만들어 바람이 시원하게 드나든다.

구암서원
구암서원 미디어파사드

북구 연암공원로 구암서원은 1665년 창건한 건물로 달성서씨의 선조를 모시는 곳. 구암서원이 있는 해발 134m 연암산은 달성에 세력을 둔 지방호족, 달성서씨의 집성촌이 있던 곳이다. 마을 여러 곳에 서당이 많아 ‘서당골’로 불렸다. 조선시대 서원의 전형으로 서원을 들어서면 강학 공간인 초현당을 중심으로 기숙사인 경례재와 누학재가 마주 보고 있다. 서원의 가장 중요한 장소인 사당 숭현사는 초현당 뒤 가장 깊은 곳에 있으며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관례, 다례, 밥상머리 예절, 국악, 활쏘기, 서예 등 다양한 선비문화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구암서원 미디어파사드
구암서원 미디어파사드

구암서원은 밤이 더 아름답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서원 건물 곳곳에서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진다. 계단과 건물에 선비들이 등장하고 꽃이 피어나며 아름다운 사계를 배경으로 선비문화가 펼쳐져 한 편의 멋진 공연을 감상하게 된다. 그중 인상 깊은 단어 하나 ‘박기후인(薄己厚人)’. 남에게는 후하고 자신에게는 박하게 한다는 뜻으로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다. 나도 남에게 좀 더 후한 인심을 써야겠다. 서원 여행 왔다 좋은 말 가슴에 품으니 귀한 선물 받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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