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SNS에 “시민들 직면한 재앙 충격”
9월 퇴임 앞두고 마지막 방미 성과 빛 바래

오는 9월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방미는 장장 16년에 걸친 ‘메르켈 시대’의 대미를 장식할 외교행사라는 점에서 치밀하게 준비되고 미국 정부도 정성껏 대접했으나, 메르켈 총리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독일을 강타한 거의 100년 만의 기록적 폭우 탓에 그 의미가 크게 퇴색하고 말았다. 애초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국 워싱턴행에 올랐을 메르켈 총리는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등 준비된 일정을 소화하는 내내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1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자들 앞에 선 바이든 대통령은 수십명이 목숨을 잃은 독일 폭우 및 홍수 사태를 언급하며 메르켈 총리, 그리고 독일 국민을 위로하는 것으로 운을 뗐다. 그는 독일과 그 인접국인 벨기에, 네덜란드 등을 강타한 폭우와 그로 인한 인명피해를 “비극(tragedy)”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희생에 대해 저와 우리 미국인 모두 독일인들한테 진심 어린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했다.
뒤를 이어 모두발언에 나선 메르켈 총리 역시 독일 폭우 피해에 관한 설명에 상당한 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갑자기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재앙에 직면했다”며 “작은 개천들이 범람하면서 거대한 파괴적인 강물로 돌변했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독일에 있는 수백만명의 다른 국민도 저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회견은 미·독 정상회담 결과를 언론에 설명하는 자리였으나 메르켈 총리는 고국의 국민들을 향해 “저는 여러분을 고통 속에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최선을 다해 인명구조와 피해 수습에 노력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임기 중 마지막이 될 이번 미·독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언론은 장장 16년에 걸친 메르켈 총리 집권기, 특히 이 기간 동안의 미·독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유력 언론은 메르켈 총리가 그동안 상대한 미국 대통령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부터 바이든 현 대통령까지 4명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메르켈 총리의 워싱턴 방문이 이번까지 총 23번째이고 백악관 방문만 10번이 넘는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 역시 메르켈 총리를 향해 “지난 16년간 여기(백악관) 자주 오셨죠? 사실 저만큼 백악관 집무실 내부를 잘 알 겁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고국에서 들려오는 처참한 소식에 의기소침해진 메르켈 총리의 기분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메르켈 총리의 트위터엔 방미 성과를 홍보하는 게시물 대신 “홍수 지역에서 너무도 많은 시민들이 겪어야 하는 재앙에 충격을 받았다”는 침통한 글이 올라왔다. 미·독 양국이 자유세계 수호에 함께 헌신한다는 원칙을 확인하는 내용의 ‘워싱턴 선언’을 바이든 대통령과 합의한 것도, 명문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것도 메르켈 총리의 표현처럼 독일을 강타한 ‘충격’ 속에 안타깝게도 빛이 바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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