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격동의 이력서, 암석 25/도널드 R. 프로세로/김정은 옮김/뿌리와이파리/2만5000원
암석은 그저 돌덩이가 아니라 하나의 길잡이다. 모든 암석에는 이야기가 있기에 지질학자들은 이를 귀중한 증거로 다룬다. 지질학자들이 암석을 읽어내는 과정은 유명한 TV 시리즈 ‘CSI’의 수사관들의 수사과정과도 비슷하다. 마치 과학수사를 하는 형사처럼 희미한 증거의 조각들을 짜 맞춰가면서 과거의 ‘범죄 현장’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질학자들이 밝혀낸 공룡 멸종의 비밀이다. 1970년대 월터 앨버레즈라는 젊은 지질학자는 이탈리아 구비오 근처에서 백악기 말기와 신생대 초기(팔레오세)에 걸친 두꺼운 석회암층을 기재하고 있었다. 그의 연구 주제는 공룡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희귀 원소인 이리듐이 그저 장기간 축적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많이 측정됐다. 그는 ‘만약 그 이리듐이 대부분 우주에서 왔다면’이라는 의문을 갖게 됐다.
지질학자들은 연구 끝에 지름 10∼15㎞의 소행성이 백악기 말 지구에 부딪혔음을 알아냈다. TNT 1억 메가톤의 에너지를 지닌 이 소행성 충돌로 인해 발생한 먼지 구름이 지구 대기를 가득 채웠고, 태양 빛이 차단되어 먹이 사슬이 바닥부터 붕괴한 것이다. 소행성 충돌로 인한 공룡 대멸종 시나리오는 이렇게 발견됐다.
모든 암석에는 약 50억년 전부터 끊임없이 변화해온 지구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책 ‘지구 격동의 이력서, 암석 25’는 응회암부터 빙하 표석까지 오늘날 이 땅을 이루는 중요한 암석과 그것을 만들어낸 지질현상을 탐구한다. 더불어 이와 관련된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살피면서 지구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준다. 여기에 지질학의 발전을 이끈 과학자들의 이야기도 담겼다.
저자 도널드 R. 프로세로는 캘리포니아 공과대, 컬럼비아대 등에서 40년 가까이 고생물학과 지질학을 가르쳐왔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 폴리테크닉대 지질학과와 피어스 칼리지 지질학과의 겸임교수이자,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자연사 박물관의 척추동물 고생물학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1991년 고생물학회에서 40세 이하의 가장 뛰어난 고생물학자에게 수여하는 슈체르트상을 수상했고, 2013년에는 미국 국립지구과학교사협회에서 지구과학 분야의 뛰어난 저작과 편집 작업에 대해 수여하는 제임스시어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300편이 넘는 과학 논문과 35권 이상의 책을 저술했다.
한국어판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명예연구원인 이성록 박사가 우리나라의 자연경관과 박물관을 소개한다. 경북 경주 양남 주상절리군은 천연기념물 제536호로 지정되었으며 누워 있거나 기울어진 다양한 형태의 절리 중에서도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서해 소청도에는 약 10억년 전 박테리아의 활동을 보존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 평가받는 스트로마톨라이트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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