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계급의 배타적인 소유형태 비판
정부 긴축정책 탓 문화 공유지 축소
도서관 등 사회적 공공재 확대 강조
“인류애 배우고 개선하는 장소·방법”

공유지의 약탈/가이 스탠딩/안효상 옮김/창비/3만원
“대지, 이는 짐승과 인간 모두를 구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동의 보고(寶庫)”이다. 물을 공공재로 보는 원칙은 고대 세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공공 수도와 위생시설을 숱하게 건설한 로마는 물에 대한 접근을 시민의 권리로 간주했다. 그러나 인류가 이런 당위와는 거리가 먼 현실을 살아왔음을 잘 안다. 극히 소수의 부자들이 대부분의 토지를 차지한 오늘날, 땅은 공공재가 아니라 대표적인 사유재산이다. 국제 컨소시엄의 민간업자가 물 가격을 세 배로 올린 볼리비아에서 ‘물전쟁’이라고 불린 폭력적 항의가 발생한 적도 있다.
토지와 물을 포함한 광물, 공기, 숲 등 자연자원은 영국 런던대 가이 스탠딩 교수가 말하는 ‘공유지(commons)’의 대표적인 항목이다. 여기에 “수세기에 걸쳐 구성된 사상과 정보의 체계 위에 건설된 사회로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을 포함하면 그가 말하는 공유지의 얼개가 갖춰진다. 그것은 접근과 이용이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관리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책은 다양한 유형의 공유지가 어떻게 약탈당했는지, 왜 공유지를 부활시켜야 하는지, 공유지에서 비롯되는 수익을 공평하게 나눌 방법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공유지와 관련된 기본정신을 보여주는 오래된 기록으로서 13세기 영국의 ‘삼림헌장’를 소개한다. 훗날 세계 각국이 채택한 헌법과 인권보호의 영감이 된 ‘마그나카르타’와 함께 공인된 삼림헌장은 “왕실 숲에서 가축을 방목하고 사료를 채취할 권리, 각종 목재와 석재를 채취할 권리를 명시했고, 이는 보통법으로 자리를” 잡았다. 삼림헌장은 당시 국왕과 일부 귀족들이 보인 자의적이고 부패하고 과도한 행태와 계속되는 왕실 숲의 확대에 진절머리를 느낀 하급귀족, 교회, 대중 노동자 등이 합심해 이뤄낸 성과다. 그것은 숲으로 대표되는 공유지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 공유지에 의존한 생활의 영위, 공유지의 보존과 재생산 등에 대한 오래되고 명확한 증거다.
삼림헌장의 정신을 잇는 승리의 기억이 없지 않으나 저자는 “대개는 정치의 계급지배를 통해 꾸준히 진행된 공유지의 약탈이 이후 세기들의 특징”이라고 망설임없이 규정한다.

공유지의 핵심은 자연자원이고 토지가 이를 대표하지만 토지만큼 소수에 집중되고, 배타적인 소유 형태를 보이는 것도 없다. 책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영국 전체의 토지 중 공유지는 5% 정도에 불과하다. 이런 현실의 이면에는 소수에 의한 토지 집중이 있다. 저자는 이 중 한 사례로 찰스 2세의 후손으로 영국에서 가장 큰 사유지를 갖고 있는 제10대 버클리 공작을 예로 들며 “그는 27만7000에이커를 상속받았는데, 여기서 단 하루도 일한 적이 없다”고 비꼬았다. 영국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인 토지 공유지의 약탈은 당장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산업적 농업을 장려하는 결과로 이어져 생물다양성을 축소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 요소인 물은 가장 논쟁이 치열한 공유지로 꼽힌다. 물의 사영화는 1980년대 시작되어 “최근 수십년간 물은 법인자본이 이윤을 낼 수 있는 희소한 상품으로 바뀌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이는 사기업의 효율성, 사유화를 통한 물공급 인프라의 개선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추진되었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의문이다. 저자는 영국의 경우 물 사영화가 중국, 싱가포르, 중동 등 외국 자본에 의해 주도되어 “실제로 사영화는 식민화의 기초공사였다”고 주장했다.
저자의 공유지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자연자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공공재로까지 확대된다. 그중 하나가 문화 공유지다. “책만이 아니라 전시회, 음악회, 영화 상영 등 예술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도서관, “인류의 공동유산과 자연유산, 종(種)들과 수많은 형태의 상호작용의 보고인” 박물관, “좋은 사회의 핵심적 감정인 공감” 능력을 키우는 공공 극장 등이 곳곳에서 축소되고 있다. 이는 예술을 “도전적이고 비판적이며 전복적이기까지 한 창조물이 아니라 수동적인 오락물로서 장려하는” 상업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문화를 상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문화 공유지에 대한 멸시를 반영한다”며 “문화 공유지는 우리의 공유감, 우리의 공감, 우리의 인류애를 배우고 개선하는 장소이자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저자가 공공지 약탈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건 그것의 유지, 재생에 관여하는 인력, 자원의 축소를 초래한 정부의 긴축 정책이다. “공유지의 체계적인 상실은 정부가 촉발했으며, 민주적인 절차도 따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2010∼2020년 영국 지방정부의 지출항목을 분석해 “공원, 박물관, 도서관, 극장 등을 포함해서 법으로 정하지 않은 문화 서비스와 레저 서비스 자금은 지방세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줄어 50% 이상 삭감되었다”는 걸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공유지 약탈에 대한 저자의 경고는 이렇다.
“공유지 약탈의 다섯번째 물건이 진행 중이며, 이는 지구화 및 2007∼08년의 금융위기 이후 강제된 긴축 체제에 의해 가속화되었다. 비단 토지만이 아니다. 우리가 공동으로 갖고 있거나 이용하던, 혹은 공익을 위한 모든 것-공원에서 경찰까지, 학교에서 하수도까지, 심지어 우리가 숨 쉬는 공기까지-이 공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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