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니어 유튜버 밀라논나(사진)가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풍백화점 사고를 언급했다.
지난 15일 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3’에는 유튜브를 통해 뛰어난 패션 감각을 선보이는 밀라논나가 출연했다.
밀라논나는 “지명 밀라노와 할머니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논나'를 합친 단어다. 밀라노 할머니라는 뜻”이라며 “본명은 장명숙이고 1952년생이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밀라논나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다. 한국인 최초 밀라노 패션 유학생, 1986년 아시안 게임 개·폐회식 의상 디자인, 세계3대 오페라 하우스 이탈리아 스칼라 극장 동양복 컨설턴트, 90년대 명품 브랜드를 국내 론칭한 경력의 소유자다.
밀라논나는 이탈리아 유학 시절 가장 오래된 패션 스쿨 마랑고니에 진학했고 동문으로는 돌체앤가바나의 도메니코 돌체, 모스키노의 프랑코 모스키노 등이 있다고.
밀라논나는 남편과 함께 3살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당시 유학을 위해 여권을 만들러 갔을 때 아이는 함께 출국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당시에는 국부 추가 유출 우려로 외국에 자녀를 동반할 수 없었던 것.
밀라논나는 “너무 어리니까 기억 못 한다”는 말에 2년 정도의 유학은 괜찮다고 생각해 유학을 결정했다. 더불어 밀라논나는 이탈리아에서 아동복 수업 당시 두고 온 아들 생각에 도저히 디자인할 수 없었고, 이에 결국 로마 주재 한국 대사관에 문의했다. 요구에 따라 이탈리아인 재정 보증인을 구해 아들을 데려왔다.
유학을 마친 밀라논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1986년 아시안게임 개폐회식 의상 디자인을 맡아 국가로부터 디자인료를 받은 최초의 디자이너가 됐다.
화려한 이력과 열정에도 그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 있었다. 아들의 뇌출혈 수술과, 자신이 출근하지 않던 날 벌어진 상품백화점 붕괴사고였다.
큰아들이 수능을 열흘 앞두고 동정맥 기형으로 뇌 수술을 받게 됐다는 그는 “아들이 수술 중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때 갑자기 기도가 나오더라. ‘아들만 살려주시면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간절하게 기도했다”고 말했다.
밀라논나는 “1년 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동료들을 많이 잃었다. 제가 그 때 월, 수, 금요일에 출근이었는데 삼풍백화점이 목요일에 무너졌다. 저도 죽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살아남은 것에 대한 부채감이 컸다.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더라”라며 “이런 일들을 겪은 뒤 ‘산이라면 넘자, 강이라면 건너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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