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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으로 그린 책 그림… “평면의 한계를 넘은 시간예술”

입력 : 2021-07-15 20:00:23 수정 : 2021-07-15 20: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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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용 개인전

극사실적 묘사, 시각적인 즐거움 줘
이진용 ‘무제’. 박여숙 화랑 제공

수백쪽짜리 책들을 가지런히 쌓아 올린 책 더미. 그렇게 종이 수천장을 켜켜이 쌓은 단면이 캔버스를 채우자, 화면에는 숱한 가로줄무늬가 생긴다. 오래된 책의 색 바랜 종이, 닳고 해어진 종이들이 가로줄무늬 사이 사이에 흔적을 드러내고, 일정하게 정리된 듯한 화면에 비정형적 장식이 툭툭 생긴다. 이진용 작가의 ‘무제’ 작품이다. 화면은 눈으로 다 인식하지 못한 얇은 종이 단면들을 확대해 보여주는 극사실적 구상화이자,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선들로 채워진 추상화이기도 하다.

서울 용산구 소월로에 위치한 박여숙화랑에서 ‘이진용 개인전: 환상이 스며든 현실, 이진용의 환상적 리얼리즘’이 한창이다. 자신이 수집하고 있는 오브제들을 소재로 극사실주의, 포토리얼리즘으로 불리는 작품들을 선보여온 이진용 작가가 이번엔 새로운 소재로 변주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바로 오래된 책들이다.

그는 열정적인 수집광이다. 특정 사물들을 편집증적 태도로 수집하고 자신의 공간을 채운다고 한다. 화랑 관계자는 “미술사에서 많은 유명 작가들이 자신만의 기호와 취미를 반영한 컬렉션을 갖고 있었다. 렘브란트가 루벤스나 반 다이크 같은 화가들의 회화작품과 다양한 오브제를 컬렉팅했고, 고갱 역시 세잔의 작품이 첫 소장품이었던 컬렉터”라고 했다. 이어 “이 작가 역시 책, 열쇠, 여행가방, 목판활자, 화석 등 다양한 오브제들을 수집해 작업실에 가득 채워놓고, 그 사물들을 향해 자신이 느껴온 감정과 세월의 흔적, 외양까지 캔버스에 담아낸다”고 설명했다.

극사실적 묘사가 시각적 즐거움을 주고 특유의 어두운 배경이 주는 깊이감이 사색에 빠져들게 한다. 처음에는 책이라는 형상으로 다가오지만 이어 관람객이 눈치채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라는 ‘개념’이다. 작가는 “실제 존재하는 형상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시간의 축적을 표현한 것”이라 말한다. 그가 그린 책들은 실제 사물을 캔버스 앞에 두고 보면서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머릿속에 그린 관념, 상상을 그린 것이다.

이건수 미술비평가는 이번 전시에 쓴 글에서 “한 획 한 획, 한 점 한 점 중첩되는 선들과 얼룩지는 점들은 시간의 켜처럼 겹겹이 쌓여져 극사실이 아닌 초사실의 장면”이라며 “평면의 한계를 넘는 일종의 퍼포먼스이자 시간예술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모노크롬 계열의 추상미술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이진용의 작업은 미술사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의미있는 손길”이라고 평했다. 31일까지.


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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