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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서 약 1500년 전 삼국시대 추정 180cm 최장신 인골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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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15 16:00:00 수정 : 2021-07-15 16: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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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탑동 유적에서 나온 키 약 180㎝ 인골 모습.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1500여 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경주 신라시대 무덤에서 신장이 180㎝에 달하는 인골이 발견돼 화제다.

 

한국문화재재단은 신라 고분이 밀집한 경주 탑동 유적에서 발굴조사를 진행, 현재까지 확인된 삼국시대 인골 가운데 최장신으로 추정되는 키 180㎝ 정도의 남성 인골을 찾아냈다고 15일 밝혔다.

 

목곽묘(木槨墓∙덧널무덤) 2호로 명명한 무덤에서 출현한 인골은 출토 당시 키가 대략 175㎝로 측정됐다. 하지만 턱이 가슴 쪽을 향하도록 당겨진 상태여서 실제 신장은 더 컸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문화재재단 관계자는 “삼국시대 무덤에서 조사된 남성 인골의 평균 신장은 165㎝ 정도”라며 “이번에 나온 인골은 보존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고 말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전남 나주 정촌고분이나 경주 월성에서 발견된 인골의 키가 약 165㎝로 알고 있다”며 “넙다리뼈를 이용해 키를 예측한 결과도 175∼180㎝ 수준으로 나왔고, 몸집도 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특히 흥미로운 사실은 마치 관에 시신을 쑤셔 넣은 듯하다는 점”이라며 “얼굴이 하늘을 향하지 않은데다 발도 편안한 모습이 아니라 다리와 거의 수직을 이루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보통은 시신에 맞춰 관을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이 인골은 기성품 관에 안치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추정했다.

경주 탑동 적석목곽묘 6호 출토 인골.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인골의 또 다른 특징은 ‘척추 원반 탈출증’을 뜻하는 이른바 디스크 환자처럼 척추가 변형돼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조사단은 시신을 두는 과정에서 변화가 발생했을 수도 있고,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해 실제로 디스크 증상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는 것.

 

다만 인골의 직업을 확실하게 유추할 수 있는 유물은 나오지 않았다. 부장품은 대부분 토기였고, 머리 쪽에서 농기구인 괭이의 날로 짐작되는 쇠붙이가 발견됐으며, 무기류는 없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인골의 인류학∙병리학 연구를 진행해 신라인 생활과 당시 환경을 규명하기로 했다. 또 두개골을 활용해 신라인 얼굴을 복원하고, 유전자 본체인 DNA를 추출해 현대인과 비교하는 작업도 함께 벌일 예정이다.

 

한편 경주 남천과 인접한 도당산 아래에 있는 탑동 유적은 신라시대 중요 무덤떼로,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덧널무덤) 약 130기를 비롯해 무덤 180여 기가 있다. 피장자는 다수가 대릉원에 묻힌 사람보다 신분이 낮은 중∙하층 귀족으로 추정된다.

이번 조사에서는 5∼6세기 무덤 24기와 인골 12기가 확인됐다. 다만 키가 180㎝에 가까운 인골을 제외한 나머지 인골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유물은 토기가 많았고, 장신구나 철기류는 적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탑동 유적은 습지처럼 물이 흘러서 인골이 남아 있는 경우가 꽤 있다”며 “장신 인골처럼 부패하지 않은 인골이 나온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 “고인골은 옛사람의 유전학∙생물학 특징과 생활 환경을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자료이지만, 관련 제도가 갖춰지지 않았다”며 “고인골을 문화재로 볼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조속히 제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주=이영균 기자 lyg02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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