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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의미·중관계사] 중국의 자강운동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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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7-11 22:46:59 수정 : 2021-07-11 22: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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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행사를 가진 자리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멸망하는 중화민족을 구하기 위한 사례를 열거했다. 태펑천국, 무술변법(1898), 의화단의 난(1899)과 신해혁명(1911) 등이었다. 이들은 실패했지만 그는 중국공산당이 공산혁명의 성공과 개혁·개방정책의 채택으로 국가와 민족을 구했다고 자부했다. 이들은 모두 서구 열강의 침략과 지배의 대항마로 구국과 자강(自强)을 호소했다.

시대와 관계없이 중국의 호소는 독자적으로 이뤄질 수 없었다. 그때나 개혁·개방 초기의 중국은 자본, 기술, 인재, 제도, 사상 등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내부적인 혁신과 외부의 도움이 요구됐다. 과거 중국은 열강 중 가장 신뢰했던 미국의 도움에만 의존했다. 오늘날의 개혁·개방 성과도 미국 없이 논할 수 없다. 차이점은 개혁과 개방의 의지가 과거에 부족한 데 있었다. 가령, 변법운동은 100일 만에 중단됐다.

왼쪽부터 당국안, 용굉, 첨천우 출처:위키피디아

‘벌링게임 조약’으로 미국은 중국의 인재 양성부터 교육, 의료, 종교 시설 등의 운영에 투자를 포함해 큰 도움을 줬다. 중국 유학생에게도 미국은 문호를 개방했다. 이의 대표적인 수혜자는 용굉(容?)이었다. 그는 1847년 고등학생 시절 도미해서 1854년에 미국 대학(예일대)을 졸업한 첫 중국인이었다. 중국의 자강을 위해서 서구의 기술 도입과 인재 양성을 그는 주장했다.

당시 동치왕은 이를 수렴하고 1872년에 첫 중국인 유학생 단체를 파견했다. 진난빈(陳蘭彬)을 단장, 용굉을 부단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이들은 1875년에 각각 첫 미국 공사와 부공사로 부임한다. 비록 이 유학 프로그램이 1877년에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됐지만 이들 중 귀국한 이들은 중국 자강에 선봉적인 인물이 됐다. 가령, 예일대를 졸업한 당국안(唐國安)은 칭화대의 첫 총장이 됐고, 첨천우(詹天佑)는 중국 ‘철도의 아버지’로 등극했다. 오늘날 시진핑은 경제와 과학기술 등 많은 분야에서 자립·자강을 다시 한 번 외쳤다. 역사를 귀감 삼아 미국과의 공조가 자강에 가장 효용이 있음을 자각해야 하겠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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