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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보다 재밌고 잘 만든 뮤지컬 ‘비틀쥬스’

입력 : 2021-07-12 03:00:00 수정 : 2021-07-11 09: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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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일번지에서 오랜만에 블록버스터급 작품이 날아왔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2019년 처음 선보인 따끈한 신작 ‘비틀쥬스’다. 스타일리스트 팀 버튼 영화감독 출세작인 1988년 동명 영화가 원작이라지만 잊어도 좋다. 원작보다 재미있고 확 바뀐 내용은 훨씬 더 좋다.

 

주인공은 악마의 아들 비틀쥬스. 어쩌다 지옥에서 쫓겨나 인간 세상에서 유배생활 중인 괴짜 유령인데 너무나 외롭다. 그래서 외딴집 바바라·아담 부부가 기다린 대로 죽자 이들을 저승길에서 새치기해 자신의 친구로 만들려 한다. 여기에 부동산개발업자인 찰스와 그의 딸 리디아, 그리고 예비 새엄마 델리아가 이사 오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원작보다 탄탄한 줄거리

 

영화로는 한바탕 유령 대소동이었던 ‘비틀쥬스’는 뮤지컬에선 완연한 가족극이 됐다. 미워할 수 없는 악동유령 비틀쥬스 매력은 여전하다. 하지만 극을 이끌어 가는 건 죽은 엄마를 못 잊어 아빠와 사이가 어긋나고 외로움에 저승길까지 달려가려는 리디아다. 어쩌다 유령을 만나 친구가 되고 저승에서 벌이는 모험을 거쳐 아빠의 사랑을 확인하는 리디아 성장기는 뻔하지만 감동적이다.

거대한 퍼펫, 개성 넘치는 유령들이 펼치는 군무와 화려한 볼거리가 일품인 뮤지컬 ‘비틀쥬스’. 98억년 동안 인간들을 겁주며 살아온 비틀쥬스가 유령을 볼 수 있는 외로운 소녀 리디아를 만나면서 요절복통 이야기가 펼쳐진다. 2019년 뉴욕 브로드웨이 초연작이 해외에서 공연되는 첫 무대다. 팀 버튼 영화감독 원작 특유의 환상적인 스타일이 살아있는 무대와 비주얼이 흥겨운 춤과 가족애를 강조한 줄거리와 함께 감동을 선사한다. CJ ENM 제공

‘98억년’이나 살았다는 비틀쥬스 역시 새 친구들을 만나 변한다. 자신의 계략에 리디아 꾀가 더해지면서 단 2분만 경험한 인간 삶에서 희로애락을 맛본다. 그리고선 “외로운 건 마찬가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자신 본연의 성향보다 남들이 보는 모습에 더 집착했던 바바라·아담 부부는 유령이 되어서야 가식을 벗어던진다.

 

또 비틀쥬스는 등장할 때부터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리디아가 저승에서 만난 유령들의 넋두리 ‘이제야 알게 된 것’은 새겨들을만하다. 삶을 힘들어하는 리디아에게 자존감이 낮아 죽음을 택했다는 미스 아르헨티나 출신 유령은 “죽음은 끝이고 절대 뒤로 돌릴 수 없다”며 삶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혼을 쏙 빼놓는 춤과 노래뿐이었으면 화려해도 공허했을 무대가 이러한 메시지로 채워지면서 감동을 만들어낸다. 

 

◆무대에 구현된 환상세계

 

사실 ‘비틀쥬스’ 국내 초연엔 물음표가 여럿 따라붙었다. 원작은 30년 전에도 국내 관객 취향이 아니어서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했던 영화다. 게다가 ‘무대 테크닉 완성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유례없이 개막을 두 번이나 연기하면서 그 완성도나 흥행성이 관심사였다. 

실제 본 무대는 제작사가 장담했던 대로다. 화려하고 독특한 무대와 오브제는 물론 거대한 퍼펫, 의상과 여러 특수효과는 ‘비틀쥬스’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키는 상상을 채워줄 만한 기상천외하고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조명과 영상, 특수효과와 불꽃효과는 그 합을 맞추느라 얼마나 많은 연습을 반복했을지 짐작하게 한다. 

 

너무 커서 문제인 세종문화회관 무대도 오히려 이번 공연에선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여러 모습으로 바뀌는 ‘펀 하우스’ 자체가 전·후진하며 다양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무대 뒤편이 깊은 만큼 더욱 그로테스크한 무대가 됐다. 세종문화회관은 음향 역시 최상으로 만들기 어려운 공연장으로 손꼽히는데 ‘비틀쥬스’는 블록버스터급 뮤지컬에 손색없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명장면, 명연기

 

뮤지컬 흥행작이라면 명장면은 하나 이상이어야 한다. ‘비틀쥬스’는 단연 1막 마지막 장면 ‘데이-O, 바나나 보트송’과 ‘피날레 쇼타임’이다. 리디아 가족 저녁 식사 자리에 유령이 빙의하면서 팝 명곡 바나나 보트 송에 맞춰 모두가 노래 부르는 장면은 보는 이도 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한다.

 

비틀쥬스 역에 유준상과 함께 출연 중인 정성화는 보는 이도 숨찰 정도로 다양한 춤과 동작이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다양한 즉흥연기도 필수인 이 어려운 배역을 찰지게 소화한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체화했다.

 

베테랑인 정성화가 제 몫을 했다면 리디아 역에선 홍나현이 제 옷을 입은 것 같은 연기와 노래로 뮤지컬 팬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자신을 위한 작품을 만난 배우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목소리와 자신감으로 부르는 노래가 객석을 신나게 한다. 

가창력으로 손꼽히는 신영숙도 ‘비틀쥬스’에선 어리숙하나 매력적인 델리아, 그리고 미스 아르헨티나 유령으로 돋보이는 연기와 노래를 선사한다. 특히 미스 아르헨티나 유령으로 노래 부르는 장면에선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과감한 춤과 노래로 이 새 작품에 뮤지컬 톱 여배우가 쏟아부은 열정을 보여준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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