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 시간이 지난 얘긴데, 책을 만들기 위해 모 출판사에 이 그림 도판을 주었더니 거꾸로 된 모습을 뒤집어서 보내왔다. 그래서 이 작가는 원래 거꾸로 된 인물을 특징으로 한다고 말하며 바로잡은 적이 있다.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주로 인간의 형상을 거꾸로 된 형태로 나타낸다. 사회의 조직적 사고나 정형화된 규범과 제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합리성 위주 사회에서 강조되는 획일화나 형식에 얽매이는 것을 피하고, 자유분방한 감정 표현으로 향하기 위한 점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전범국인 독일에서는 반성과 새로운 예술적 모색을 향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중 한 경향이 바젤리츠로 대표되는 신표현주의였다. 이들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무너지고 나치가 들어서면서 2차 대전으로 향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바이마르 공화국 이전 독일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인 표현주의로 돌아가 문화적 정체성을 다시 확립하려 했다.
다른 한편 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반이성주의와도 관련된다. 이성을 통한 과학 발전이 문명의 편안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무기를 만들어 인간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비극도 만들어냈다. 그 후 인간 이성이 과연 믿을 만한가. 합리적 사고가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다. 이를 배경으로 철학적·문화적으로 반이성주의가 나타났고, 신표현주의도 그중 하나였다.
대표적 작가인 바젤리츠는 여기서 붉은색과 검은색 물감을 거침없이 사용해서 거친 인상의 거꾸로 선 인물을 표현했다. 색채의 강렬함에 격렬한 필치를 덧붙여 당시 유행했던 추상미술의 단순한 형식성에 반발했다. 이런 신표현주의를 시작으로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전 세계에 표현적인 구상미술 운동이 퍼져 나갔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1000명을 훌쩍 넘어서면서 4차 대유행으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오랫동안 구속과 제약에 지친 사람들의 벗어나고 싶은 욕구에 정부의 성급한 방역완화가 불을 붙인 탓이다. 조금만 더 참지 그새를 못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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