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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 위스키의 몰락과 부활 [명욱의 술 인문학]

입력 : 2021-07-10 18:00:00 수정 : 2021-07-10 13: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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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 위스키를 베이스로 커피와 설탕, 생크림이 따뜻한 칵테일인 아이리시 커피. 장생건강원bar 제공

위스키의 종주국이라면 어떤 나라가 떠오를까? 아마도 상당수는 스코틀랜드라고 말할 것이다. 당연히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이야기는 달랐다. 스코틀랜드가 위스키의 종주국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아일랜드였다.

거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6세기에 중동지방을 방문한 아일랜드 수도승이 향수를 만들기 위해 증류 기술을 가져왔으며, 사자왕 리처드의 아버지인 헨리 2세가 아일랜드를 점령했을 때, 당시 보리로 만든 증류주를 마시고 있다는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정확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라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확실한 것은 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아일랜드가 가장 많은 위스키를 만들었다는 것. 당시의 아이리시 위스키는 미국, 인도, 호주 등으로 수출하며 고급술로서 명성을 얻었다. 특히 19세기에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으로 수많은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자연스럽게 고향의 술인 아이리시 위스키를 찾기도 했다. 전 세계 위스키의 60%를 아일랜드가 담당했다.

하지만 당시 아이리시 위스키는 몰트로 만든 순수한 위스키에 가까웠다. 여기에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다양한 곡물로 저렴하게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 그레인 위스키가 등장하면서 아일랜드의 몰트위스키는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다.

게다가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합병되면서 스카치위스키는 영국이라는 든든한 소비처가 있었던 반면,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이어갔고 결국 1922년 꿈에 그리던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됐다. 문제는 영국으로 수출이 어려웠을 당시 최대 시장인 미국이 금주법(1919~1933)을 시행하면서 발생했다. 시행령으로 아일랜드는 미국으로 위스키 수출이 금지된 것.

게다가 마피아 등이 몰래 만든 밀주 형태의 조악한 위스키가 미국 내에 유통됐는데, 이 술이 아이리시 위스키 라벨을 붙인 채 판매됐다. 그러다 보니 미국 내 아이리시 위스키는 더욱 이미지가 나빠졌고, 금주법이 풀린 이후에도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했다.

여기에 아일랜드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및 미국의 연합군 측이 아닌 중립을 표방하면서 아이리시 위스키 판매처가 더욱 줄어들었다. 유럽 전장에 온 미군에게 제공되는 술은 스카치위스키가 차지했다. 그 결과 스카치위스키는 삶과 죽음의 전장에서 살아 돌아온 미군에게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던 추억의 술이 됐고, 그렇게 스카치위스키가 위스키 시장의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하지만 아이리시 위스키에게 찬스가 찾아왔다. 아일랜드 섀넌 공항에서 판매한 칵테일 ‘아이리시 커피’가 공항 이용자에게 호평을 받은 것이다. 아이리시 위스키를 베이스로 커피와 설탕, 생크림이 들어간 따뜻한 칵테일로, 바람이 많고 춥고 비가 많은 아일랜드 날씨에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미국 신문기자가 공항에서 맛본 이 칵테일은 귀국 후, 미국에서 만들게 됐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아이리시 위스키는 서서히 존재감을 다시 어필하게 된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1980년 아이리시 위스키 법을 제정, 아이리시 위스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지난 영광의 모습을 되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스카치위스키가 지금의 시장 헤게모니를 잡은 것은 겨우 100년 정도밖에 안 됐다. 100년 후에는 또 누가 헤게모니를 잡을지 궁금한 대목이다. 승자와 패자는 언제나 뒤바뀌기 때문이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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