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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서사·구성… 美영화 보는 듯

입력 : 2021-07-05 03:00:00 수정 : 2021-07-04 19: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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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 리뷰
갈채 속에 펼쳐진 국립오페라단의 ‘서부의 아가씨’ 초연 무대. 1850년대 미국 한 금광마을을 배경으로 독립심 강한 술집 주인 미니와 도적 두목, 보안관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1900년대 유럽의 황금기 ‘아름다운 시절’ 마지막을 만끽하던 인기 작곡가가 대서양 건너에서 목격한 미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의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인기 절정이었던 작곡가 푸치니.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메트) 초청으로 1906년 미 대륙에 처음 발을 들였다. 신대륙의 호방한 자연과 개척민의 굳은 기상에 반한 그는 1910년 ‘서부의 아가씨’를 메트에서 초연한다. 훗날 이탈리아인이 만든 서부극 영화, ‘마카로니 웨스턴’ 전성시대를 예고한 작품이다.

음악성에서도 고루한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성공적으로 보여준 까닭에 토스카니니, 말러, 라벨, 스트라빈스키 등 걸출한 20세기 작곡가가 입을 모아 칭찬한 이 작품이 1일부터 4일까지 국립오페라단 무대에서 국내 초연됐다. 연주도, 노래도, 제작도 어려워 좀처럼 무대에 올리기 쉽지 않은 명작이 세상에 나온 지 111년 만에 우리나라를 찾아온 것이다. 낯선 작품인 데다 미국 서부 한 탄광 마을 술집에서 남성 수십명이 어울리는 도입부는 산만하기까지 하다. 광부들이 어렵게 캔 금을 금고에 보관해 줄 정도로 마을 사람들 신망을 얻고 있는 여주인공 미니가 허공을 향해 총을 쏘며 중구난방을 정리할 때부터 극 전개는 탄력 있게 나아간다.

여느 오페라보다 탄탄한 서사와 인물 설정, 장면 전환은 ‘오페라보다 영화 같은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특히 이탈리아 출신 니콜라 베를로파를 필두로 한 이탈리아 제작진은 폭 18m, 높이 12m로 얼추 정사각형처럼 보이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 상단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 결과 만들어진 긴 직사각형 무대는 마치 몰입감 높은 시네마스코프 비율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이처럼 힘 있는 무대 위에 피에트로 리초 지휘,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로 울려 퍼진 푸치니의 낯선 오페라 선율은 통속 속에 비범이 섞여 있었다. 푸치니는 미국 여행에서 인상 깊게 들었을 법한 재즈는 물론 멕시코 음악, 아메리칸 인디언 민요 등도 갖다 썼다고 한다. 개막 공연에서 미니는 소프라노 카린 바바잔얀, 그리고 미니의 마음을 훔친 도적단 두목은 테너 마르코 베르티, 미니를 사랑했으나 포커 내기에서 지자 깨끗이 돌아서는 보안관은 바리톤 양준모가 열연했다.

푸치니는 신대륙을 위해 만든 ‘서부의 오페라’ 마지막을 미니와 도적단 두목이 새 출발 하는 장면으로 끝냈다. 오랫동안 고락을 함께 한 미니 설득에 마을 사람들은 도적을 용서하고 이들의 앞날을 축복해준다. 국립오페라단은 합창단 50명을 포함해 총 77명이 무대에 오르고 하프가 두 대나 쓰일 정도로 대규모 악단이 필요했던 이 대작 오페라를 통해 옛 미국에 충만했던 관용의 공동체 정신을 성공적으로 보여줬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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