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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해도 살아남아 번성”… 다윈주의 꼬집다

입력 : 2021-07-03 03:00:00 수정 : 2021-07-02 20:46:59
김용출 선임기자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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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상징’ 기린 목, 진화론의 허점
적자만 생존 ‘자연선택 이론’ 반박
“자연은 결점 있는 것도 허용” 주장
굿 이너프 이론으로 다윈주의 보완
평범한 것들 위한 진화 논리 제시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다니엘 S 밀로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는 신간 ‘굿 이너프’에서 자연선택은 아름다운 작품을 빚어냈지만, 평범한 존재 역시 많이 허용한다며 다윈의 적자생존 이론의 편협성을 논박한다. 사진은 인간과 유사한 원숭이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굿 이너프/다니엘 S. 밀로/이충호 옮김/다산사이언스/2만2000원

 

기원전 46년,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데리고 온 기린이 처음 로마에 모습을 드러냈고, 1414년에는 베이징에도 벵골의 무슬림 왕의 선물로 등장했다. 긴 다리와 긴 목. 기린은 사람들에게 경이였고, 특히 유독 기다란 그의 목은 많은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포유류 중에서 가장 큰 이 동물은 토양이 거의 항상 건조하고 척박한 아프리카 내륙에서 산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래서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을 뜯어먹고 늘 거기에 닿으려고 노력한다. 이 품종 전체에서 오랫동안 유지된 이 습성으로부터 앞다리가 뒷다리보다 더 길어지고, 뒷다리로 서지 않더라도 6미터 높이까지 닿을 정도로 목이 길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생물학자 라마르크의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다윈은 기린의 긴 목이 높이 달린 잎을 뜯어먹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가정하고, 이 적응 형질이 고정된 배경에 경쟁 메카니즘과 자연 선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현재의 거의 모든 교과서에는 기린의 목이야말로 진화론의 한 예로 게재되면서 진화의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다니엘 S 밀로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는 ‘기린의 긴 목이 먹이를 구할 때 유리하다’는 진화론 주장에는 많은 허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설명인즉슨, 기린은 건기에 주로 덤불이나 어깨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풀을 뜯어먹고 높은 곳의 잎은 별로 뜯어먹지 않거나 풀을 뜯는 시간의 절반은 2m 혹은 그 아래의 잎을 뜯어먹고 보내는 등 생활 습성과 부합하지 않고, 높은 목으로 혈액을 펌프질해야 하는 관계로 혈압이 매우 높아 건강에도 좋지 않으며, 가뭄 시기에 어린 기린 가운데 가장 많이 죽은 유형은 키가 크고 몸집인 큰 수컷인 사실 등과 맞지 않다.

다니엘 S. 밀로/이충호 옮김/다산사이언스/2만2000원

밀로는 신간 ‘굿 이너프’를 통해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 특히 적자생존의 편협성을 논박하고 대신 굿 이너프(good enough) 이론을 제안한다. 즉 자연이란 다윈의 말처럼 최적화만을 추구하지 않고 중성이나 과잉, 평범성도 허용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다윈이 자연선택 이론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최적화’에 예외적인 케이스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설명한다. 자연선택은 아름다운 작품을 빚어냈지만 중성적이고 평범한 것도 많이 허용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Survival of the fittest’인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사회다윈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회학자 스펜서가 만든 개념으로, 생물학자 월리스의 제안으로 다윈도 이를 받아들였다. 문제는 적자생존 개념이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는 진화론의 기반이 됐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이론으로 확장하면서 무한 경쟁주의와 능력주의로 내달렸다는 점이다.

저자는 진화론의 문제점을 살핀 뒤 중성과 과잉, 평범성이 자연에서 계속 살아남는 모습을 예시하면서 굿 이너프 이론을 소개한다. 즉 최적자는 아니지만 평범한 생물도 살아남고 번성하기에 충분히 훌륭하다는 거다. 자연선택 이론이 자연의 기묘한 것에 경이로워하지만 굿 이너프 이론은 평범한 것까지 포괄하기에 진화론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다.

“굿 이너프 이론은 다윈주의가 누락한 것을 설명함으로써 다윈주의를 보완한다. 그것은 수평적이고 대부분 양적인 진화로, 종내 다양성과 선택적으로 중성인 종간 차이를 낳는다. 다윈주의가 자연사에서 기묘한 사건을 설명하는 반면, 굿 이너프 이론은 종의 일상적인 존재, 특히 공존한 표본들에서 두루 관찰되는 변이의 첨가를 설명한다.”

특히 과잉 문제에서 굿 이너프 이론의 강점은 선명하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이 한번 사정할 때 정자 수가 최소 3800만개 이상이면 생식능력이 있다고 간주되지만, 전체 남성 가운데 절반은 사정할 때 최소 정자수보다 5배나 많은 정자를 배출하고, 침팬지의 경우 한번 사정할 때 무려 10억개의 정자를 배출한다. 이런 모습은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해 최대 효과를 내는 최적화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큰 틀에서 진화론과 자연선택 이론에 동의하면서도 적자생존 이론에 비판적인 저자는 책 후반부에서 자연과 생물에서 인간사회로 보폭을 넓힌다. 즉 적자생존 이론은 정치적 사회적 원리를 뒷받침하는 용도로 이용되면서 무한 경쟁주의와 무자비한 능력주의의 기반을 이룬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책은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 특히 적자생존 이론의 부족을 메워주고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의 논리를 제공한다.


김용출 선임기자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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