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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의 요소 제거했다고 행복할까요

입력 : 2021-06-23 02:30:00 수정 : 2021-06-22 22: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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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완전한 행복’ 작가 정유정

극단적 나르시시스트 이야기 통해
타인의 삶 어떻게 파괴하나 보여줘
불운이나 결핍이야말로 삶의 요소
행복은 그 과정서 얻어지는 성과물

초고 최대한 빨리 쓰지만 의미 없어
시작과 끝만 남기고 90%는 고쳐 써
에피소드 너무 많으면 진도 안 나가
문단 자체가 노래 부르듯 쭉 읽혀야
신작 ‘완전한 행복’을 들고 돌아온 정유정 작가는 “다음 작품은 SF에 가까운 아포칼립스(종말) 소설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욕망에 관한 이야기 3편을 쓸 예정인데, 행복의 욕망을 다룬 ‘완전한 행복’에 이어 소유에 대한 욕망을 다루고 싶다”고 웃었다. 남정탁 기자

“작품은 전 남편을 죽이고 새 남편의 아이를 죽였다는 사건의 모티브만 가져온 것이고, 나머지 이야기는 모두 새로 창조한 것입니다. 이야기도 완전히 달라요. 불행을 제거했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문학적인 질문을 가져온 것이지요.”

 

행복을 위해 불행의 요소를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극단적 나르시시스트의 파멸을 그린 장편 ‘완전한 행복’(은행나무)을 들고 2년 만에 돌아온 정유정 작가는, 작품의 집필 동기를 설명하다가 이 같은 주의를 당부했다, 눈을 반짝이며.

 

작품은 주인공 유나가 8세 때의 경험을 벗어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자기애에 빠져 더 완벽한 행복을 위해 저지르는 악을 섬뜩하게 그린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112쪽) 자신의 행복을 위해선 악행을 서슴지 않는 유나, 그의 무지막지한 행복 추구에 희생되는 주변 사람들, 불행의 운명에 내던져진 여동생과 남편, 딸….

 

‘완전한 행복’은 출간과 동시에 교보문고가 지난 18일 발표한 6월 둘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종의 기원’(10위), ‘7년의 밤’(21위) 등 그의 과거 작품도 다시 주목을 받았다.

압도적인 서사와 박진감 넘치는 속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몰입감, 독자들을 첫 페이지부터 포획해 마지막 페이지까지 빠르게 끌고 가는 힘. 이것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정 작가와 지난 16일, 서울 합정역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났다. 인터뷰조차 열정적이었다.

 

―소설의 모티브나 계기는 무엇이었나.

 

“저는 보통 소설이 끝나기 2, 3개월 전부터 다음 작품은 무엇을 쓰겠다는 생각이 서는데, ‘진이, 지니’를 끝낼 즈음 쓰고 싶은 게 있었다. SNS가 활성화하면서 집단적인 자기애가 느껴졌다. 자기애나 자존감, 행복을 거의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것 같더라.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나 불운, 결핍이야말로 삶의 요소이고, 행복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과물이다. 특별한 과다 자기애, 행복에 대한 강박증을 이야기해야지 생각했다. 그때 ‘사건’이 터졌다. 수수하고 풀꽃처럼 예쁜 여자를 내세워 극단적 나르시시스트 이야기를 써보자고 생각했다.”

 

―나르시시스트는 어떤 존재인가.

 

“사람들은 자기애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보통 사람은 적당히 공격적이고 타인도 배려하기도 하는 중간쯤에 위치한다. 잘난 사람이 있으면 가다가 엎어져버려라, 하고 순간 생각하다가도 너무 무너지면 어떡하냐, 하는 생각도 한다. 반면 극단적 나르시시스트는 증오를 품는다. 굉장히 위험한 성격장애다. 유아기 때 가정 관계에서 애착관계가 잘못되면 나르시시스트가 된다. 나르시시스트는 결혼도 할 수 있고 타인 감정을 느끼고 소통도 가능하다. 다만 자기중심으로 본다.”

 

―마지막에 두 자매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너무 처연한데, 왜 그래야 했는가.

 

“언니 재인 역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서 깨야 하는 게 필요했다. 애인도 뺏기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에 순응하고 살아온 것 아닌가. 재인은 자기 안에 있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깨고 유나도 이겨야 했다. 처절하고도 끈질길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작품은 모든 존재는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타인이 불행해진다면 그 타인의 불행에 대해 책임질 의무 역시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성공한 듯하다. ‘작가의 말’에서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522쪽)고 강조한 이유일 터다.

 

2007년 청소년들이 펼치는 파란만장한 여행을 담은 장편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정유정은 2009년엔 장편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후 장편 ‘7년의 밤’(2011년), ‘28’(2013년), ‘종의 기원’(2016년), ‘진이, 지니’(2019년) 등을 잇달아 펴냈다.

 

―순문학과 하드 보일드한 장르문학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한다는 평도 있다.

 

“당선됐을 때 선이 굵은 서사라고 호평도 받고 영화 판권도 팔리면서 관심을 받았는데, 다음 소설은, 되든지 안 되든지,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작가들이 일상에서 비범한 이야기를 끌어내지만, 저의 경우 대중의 정서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소설, 예를 들면 철학적 이야기나 힐링이 되는 작품 등에는 흥미가 없었다. 많은 이들에게 운명이 뒤바뀌는 몇 번의 드라마틱한 순간이 있는데, 최선이 아닌 최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는 최악의 선택을 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선택을 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파멸했든지 소중한 것을 잃었는지 등등. 극적이고 충격적인 것을 쓰려면 가장 적합한 장르가 스릴러였다. 여기에 주제 의식도 있어야 하고, 메시지도 있어야 한다. 적어도 문학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 것을 구축하기 위해선 문장력이 있어야 하고, 짧고 속도감도 있어야 한다. 제가 택한 것은 아름다운 문장을 버리는 대신 정확성과 간결성, 속도감이었다.”

―철저한 취재로 정평이 나 있는데.

 

“최대한 자료 정리와 전문가 인터뷰, 현장 답사 등을 한다. ‘완전한 행복’의 경우 몇 달 동안 책을 읽고 노트를 정리했다. 책을 사서 노트 정리하는 이유는 장편은 긴 세월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전문가를 만난다. 경찰이 신문하는 모습이나 변호사들이 대응하는 방법 등은 배상훈 프로파일러, 약의 효능은 전대 의대 교수, 기자의 일상에 대해선 문화일보 최현미 부장 등이 각각 도와줬다. 지난해 1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호수를 보는 등 작품 무대가 되는 곳을 보고 왔다.”

 

―집필은 어떻게 하는가. 끝까지 글의 밀도가 떨어지지 않아 거의 갈아 넣은 듯하다(웃음).

 

“초고는 최대한 빨리 3개월 안에 다 써야 한다. 나중에 초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시작과 끝만 남기고 나머지 90%는 수없는 수정에 의해 고쳐진다. ‘내 심장을 쏴라’는 30번도 넘게 고쳤고, ‘7년의 밤’은 17, 8번 고쳤다. 초고를 빠르게 쓴 뒤 1년 넘게 작품에 (나를) 갈아 넣는다. 결국 작품이란 수십 번의 개작 대가이다.”

 

―특히 정유정 스타일은 속도도 굉장히 빠르지만 몰입도가 굉장히 높은데, 비결은 무엇인가.

 

“첫째는 문체다. 간결하게, 정확한 문장이 필요하다. 문단 자체가 노래 부르듯이 안 걸리고, 눈앞에 보이듯이 쭉 읽혀야 한다. 둘째는 플롯이다. 에피소드가 너무 많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에피소드를 가급적 줄이고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사건을 쭉 이어준다. 주인공이 행동하지 않고 에피소드로 ‘알’만 낳으면 곤란하다. 결국 사건 위주로 소설을 진행시키느냐, 정확하게 쓰느냐, 두 가지에 달려 있다.”

 

―어떤 작가로, 어떤 작품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수도 없이 말했지만, 그냥 이야기꾼으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장래 희망 역시 ‘훌륭한 이야기꾼’이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인터뷰 내내 진지했던 그는 이야기가 끝났을 때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목이 아프네요.” 사무실을 나서자, 문뜩 그의 원점이던 책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를 읽고 싶었다. 집 근처 서점에서 책을 사서 펼쳐보니,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소설가로서 내 꿈은 진짜 꾼이 되는 것이다. 그 옛날, 이야기 하나로 저잣거리에 모인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고 분노케 하던 만담가는 내 인생의 롤 모델이다…돌아갈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겠지만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390쪽)

 

‘만담가’라는 그의 꿈은 ‘훌륭한 이야기꾼’으로 여전히 펄펄 끓고 있었다, 화난 얼굴로 열기를 뿜어내는 저 태양 아래에서, 건물 사이를 배회하는 뜨거운 바람 사이에서. 그래서였을까, 기자는 녹취를 풀면서 땀을 흘려야 했다, 뻘뻘.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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